그래, 그곳엔 사람이 있었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에 빗대어 보면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말도 가능하겠다. 우리가 남의 사적인 여행에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그래, 나도 나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 경험한 여행의 이야기를 남이 공감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진주에서 여행을 밥벌이로 하는 J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물려받은 진주 여행업계의 로열 패밀리다. 두 딸의 씩씩한 엄마이기도 한 그가 진주에서 투어싸롱 2022 여행콘서트를 개최한다는 소식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콘서트에서 강연과 공연을 하는 이들 모두 아는 사람들이라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먼저 잡힌 약속이 있었다. 마음 속 말고 밖으로 그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들도 내가 못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린 누군가 덕분에(!) 선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갑자기 진주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순전히 그들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지리산 아래에서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던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족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세시 반에 시작한다는 행사에 맞춰 진주성 투어를 끝내고 행사 장소로 갔다. 서프라이즈! 투어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없는 환호성을 질렀고 반가움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혼자 여행을 하면 대부분 사람 이야기가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서 다니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낯선 현지에서 이야깃거리를 줄 만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진주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진주라는 도시에 갈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J가 기획한 행사에 연사로 등장한 T는 마크 러팔로를 닮았다. 나는 그를 나의 영적 스승이라 부른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른 펜션 같기도 하고 카페 같기도 한 곳의 주인장이었다. 첫 만남부터 나는 그에게 반했고(남자였지만) 그곳과 그는 나의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그 집 테라스에 앉아 우두커니 바라보던 칠선계곡과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선했다. 세파에 지쳐 무시로 찾을 때마다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 주던 두툼한 손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나곤 했다.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를 모시고 갔을 때 진심으로 울어주고 기도해 주던 그였다.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형님보다는 T님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하고 그도 나를 호근씨라고 존대한다. 그는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나는 그와 있을 때 그 사실을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다. 여행 콘서트에서는 최근에 다녀 온 터키 이야기를 해 주었다.
T님의 아지트에서 만난 K 형님은 딴따라이다. 노래하는 보헤미안 K 형님은 민중가요를 멋드리지게 부르는 자유인. 말만 가득한 투어 콘서트를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율로 채워주었다. 그때 함께 만난 또다른 K 형님은 공연의 진행을 돕고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직장인인데 아픈 마음을 늘 지리산에서 치유받고 간다. 아픈 사람들끼리 알아보는 법. 그는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T님, 두 명의 K 형님과 나를 뭉뚱그려 나마스테 브라더스라고 부른다. T님의 아지트 이름에서 땄다. 그 셋은 좀 자주 모이는 편이고 나는 아직 그들보다 어려 덜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는 브라더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형제처럼 지낸다. 이런 행사에 빠진다고 섭섭해 하지도 않는다. 와주면 그저 좋을 뿐.
여행 콘서트의 대미는 우주 대스타 슈퍼 울트라 핵인싸 여행작가 M 형이 장식했다. 서울서 직접 내려온 유명 여행작가 덕분에 관객이 많아졌다며 J는 흐뭇해했다. M 형은 같은 과 1년 선배인데 여행작가로 먹고 산다. 우리 기준으로 먹고 살 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사람이다.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친하게 지내고 있다. 다 페이스북이 연결해 준 덕분이다. M 형처럼 살 수는 없지만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형의 삶의 ⅓ 정도는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산다. 설렁설렁 노는 게 일인 것 같아도 그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글을 구독해 주는 독자들에게 글을 써서 보내는 걸 본 뒤로는 이름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잠시 들여다 보고 나서 더 존경하게 되었다. 세상이 좁고 좁아 J와 M 형은 한 다리를 건너 아는 사이였고 그 인연으로 J가 주최하는 여행 콘서트에 M 형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실감한다.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는 입담좋은 M 형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있고 신났겠나.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고 위기라고들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곳에서 분투하고 있더라. 행사를 주최한 J도 유료임에도 객석을 채운 진주시민들도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관광 도시로서 진주를 널리 알리기 위한 컨텐츠를 개발하고 신체적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댄 여행콘서트는 성공적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린, 조악한 인조화환이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욕망의 구호만 가득한 어느 진주시장 예비후보 출정식과 묘하게 대비된 여행콘서트는 비록 30~40명 정도만 모인 소박한 행사였지만 더 빛났다. 적어도 내 눈에는.
나에게는 군입대의 도시, 하지만 피로 물든 진주성이 전쟁의 참상을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도시,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잘 가꾸고 지켜가야 할 삶의 터전인 도시. 짧고도 우연한 진주 여행, 즐거웠다.
일정
05:00 집에서 출발
06:20 진주행 고속버스
10:00 진주 터미널 도착
10:30 공군교육사령부행 시내버스
11:00 공군교육사령부 후문
11:20 근처 카페
12:30 산홍냉면 점심
13:00 진주성으로 이동
13:30 진주성, 진주국립박물관 관람
15:30 여행콘서트
19:20 서울행 고속버스
23:00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도착
24:00 집에 도착
비용(100,820원)
고속버스 80,000원
시내버스 2,900원
커피 4,500원
점심 냉면 9,500원
진주성 입장료 2,000원
도너츠 선물 19,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