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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혼자 연천여행(2)

시간여행

by 오궁

우리에게 북은 늘 컴플렉스다. 북을 향한다는 것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남은 선이고 북은 악이다. 그리하여 북쪽으로 향한 시선은 곧장 거두어지게 마련이다. 군부대의 밀도가 높아서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는데 북으로 가는 길은 주저하게 된다. 월북할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그렇다. 동두천 다음 역은 소요산이다. 동두천 행도 있지만 소요산 행도 있다. 주로 소요산에 등산 가는 사람들이 탄다. 전철은 제 아무리 멀리 가도 소요산에서 내려야 하지만 수도권 광역 교통망은 버스까지 한데 아우른다. 버스로 갈아타면 전철의 한계는 극복된다. 게다가 환승요금제가 적용된다. 소요산 북쪽에는 연천읍, 전곡읍이 있다. 연천, 전곡 하니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역사 수업 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이다. 공주 석장리, 연천 전곡리, 청원 두루봉동굴, 단양 수양개 정도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지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다는 걸 배웠겠지만 기억은 거기까지만 미친다. 그것도 기특하다고 생각한다. 북으로 눈을 돌리니 김정은 동지…아니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꿩 대신 닭 아니 동두천 대신 연천이다. 간택을 받지 못한 꿩과 동두천, 그것들의 대안으로 선택된 닭과 연천, 그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1호선 전철역 신도림역에서 북쪽 끝 종점까지 가는 지하철 첫차는 5시 6분. 5시도 되기 전에 집에서 나왔다. 버스 조조할인이 되는 시간이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버스에 사람이 제법 탄다. 신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버스 기사님이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흘러나왔다. 애국가 들을 일도 부를 일도 잘 없는데 그다지 애국자도 아니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에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일터로 가는 사람, 등산 가는 사람, 지방으로 가는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등산객의 행색이었다. 등산객이면 어떻고 관광객이면 어떻겠냐만, 더구나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을 테지만 어딜 가든 뜨내기로 보이고 싶지 않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앉아서 졸았다. 종점까지 가는 터라 원 없이 졸았다. 지하 구간이 끝나고 지상 구간이 나오고 서울을 벗어나자 시골 풍경이다. 여기까지 전철이 온다고? 너무 멀잖아. 그 느낌이 무색하게 역세권에는 대규모 아파트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도시 이름이 붙은 역은 대개 시내에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마련인데 동두천역에 내리니 근처에 편의점 하나 없었다. 연천까지 가자면 다시 거기서 버스를 타야 된다. 역 광장엔 버스정류장이 두 군데가 있는데 왼쪽에 있는 건 연천 방향, 오른쪽에 있는 건 의정부 방향이다. 버스 번호가 똑같다고 아무 데서나 잡아 타면 엉뚱한 곳으로 가기 쉽다. 네이버 지도가 버스를 탈 곳을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정류장에서 버스 노선도를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심을 한다. 연천 충현탑으로 향하는 39-2번 버스를 탄다. 연천 방향 맞냐고, 충현탑 가냐고 기사님께 한 번쯤 물어볼 만 하지만 묻지 않았다. 엉뚱한 버스를 타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어딜 가도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인데 나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안심했다.


연천에서 첫 번째 여정은 차탄천 주상절리길이다. 강원도 평강의 추가령구조곡에서 발원해서 철원, 연천을 거쳐 전곡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한탄강은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를 관통한다. 침식에 침식을 거듭한 강과 내는 평지보다 낮은 곳으로 깊은 계곡을 만들었다. 수직절벽과 협곡이 생겼고 주상절리라는 절경을 남겼다. 차탄천은 북쪽으로 뻗은 한탄강의 지류다. 연천군은 차탄천 주상절리길을 군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의 하나로 가꾸고 있는 중이다. 길이는 10킬로 미터 정도고 천변을 따라 걷는 평이한 코스다. 천천히 걸어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한탄강과 만나는 종착지 끝에는 전곡리 선사유적지까지 있으니 연천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딱이었다. 연천 하면 떠오르는 한탄강과 선사유적지를 둘러보기에 최적의 동선은 차탄천 주상절리길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것.


버스를 타고 40분쯤 달려 내린 곳은 충현탑, 펌프장 정류장. 휑한 풍경이 반겨주었다. 이정표 하나 없었다. 차탄천 주상절리길을 검색해 보면 자세한 안내를 찾기 어렵다. 군청 홈페이지에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조금 더 분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다리를 건너 뚝방길로 내려갔다. 그제야 주상절리길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상절리길 안내판을 보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불안함과 어리둥절함은 여행자의 숙명이다. 여행은 그 어색함을 친숙함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그건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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