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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혼자 강릉여행(2)

기록에 미친 사람 1

by 오궁

강릉은 애시당초 올해 중에 방문할 소도시 목록에 없었다. 강릉을 어느 누가 이름 안 난 소도시라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강릉을 가게 된 것은 순전히 K형 때문이었다.

“호근아, 우리 6월 초에 강릉에서 단오제 촬영 일정이 있는데 그때 시간 되면 놀러 올래?”


K형은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이름난 사람은 아니고 다큐계 종사자 사이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한다. 나는 다큐계 종사자가 아니라 형에 대한 기억은 함께 교정에서 족구하던 여럿 복학생 형들 중에 한 명이라는 것 정도였다. 세 학번 차이가 소위 복돌이와 군대 가기 전 1~2학년이 만나기 딱 좋다. 지금은 아마 두 학번 정도일 것이다. 청춘은 늘 아프지만 군대 복무기간만큼은 요즘 청춘들이 부럽다. 그런 형과 나를 이십여년 만에 이어준 것은 페이스북이었다. 오로라를 보러 가는 다큐 출연자였던 덕에 방송국 밖의 작가, 연출자, 촬영감독, 음악감독님들과 페친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형이 친구 추천으로 뜨길래 봤더니 그 기라성 같은 다큐계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감독님이었던 것이다.


금융인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여전히 금알못으로 금융회사에 이십일 년째 다니고 있지만 한 때는 방송국 피디나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직업으로서 방송에 대한 미련은 하나도 없지만 동경의 대상으로서 방송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유튜브라는 매체가 있어서 그 아쉬움을 소소하게 위로한다. 내가 자칭 제법 재미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진지해서 예능보다는 다큐에 더 마음이 간다. K형은 학교 다닐 때도 어느 정도 친했지만 그런 멋진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하니 더 끌렸다. 좋아하는 연예인 거의 없지만 K형 같은 프로들을 추앙하는 편이고 그런 분들과 페친이 되어 교류하는 일이 즐겁다.


K형은 진지한 휴먼 다큐를 만든다. 출연자 옆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핍진하게 기록한다. 형이 10년 동안 찍은 작품은 모스크바 무슨 영화제에서 다큐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의 화려한 조명 같은 건 없다. 그는 외주 제작사의 대표로서 겪어야 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찍는다. 다큐계에서는 알아주는 대단한 감독”님”이지만 나한테는 그저 조금 끌리는 부럽고 신기한 형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하지 못했거나 못하고 있는 것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동경한다. 직장인인 내가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나한테 없는 것 중에서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 정확히 말하면 자유로운 시간. 에 아무리 유연근무제, 탄력근무제를 도입해도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을 내놓아야 월급을 받는다. 그것도 비교적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내놓아야 한다. 하루 여덟 시간, 일주일이면 사십 시간. 4주로 계산하면 한달에 일백 육십 시간을 남의 시간으로 돌려야 한다. K형은 그걸 가졌다. 시간에 있어서만큼은 새의 깃털만큼 가벼운 그가 부럽다. 그를 바라보는 일은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그를 사적인 인연의 범주 안에 둘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가진 그 자유로움을 마치 내 것의 일부인 양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동경의 마음을 담아 같은 방송 제작자(미미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그 범주에 끼워준다면)로서 촬영현장이 궁금해서 기회가 되면 한 번 구경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둔 터였다.


무당과 관련된 작품을 2편째 찍고 있는데 마침 강릉 단오제가 드디어 현장에서 열린다고 해서 잊지 않고 나를 불러준 거였다. 그러니 아내의 품(손아귀 아니다)을 벗어나 혼자 여행을 가는 데 이만큼 좋은 구실이 또 어딨겠나. 냉큼 물었지. 관대한 아내는 강릉 간 김에 더 작은 도시인 동해까지 묶어서 하룻밤 자고 오라고 했지만 줄 때 다 받는 것은 진정한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이런 호의를 적절히 명분있게 거절해야 다음을 도모하는데 유리하다.


“강릉단오제는 민중의 역사와 삶이 녹아 있는 전통축제로 음력 4월부터 5월 초까지 한달 여에 걸쳐 강릉에서 펼쳐지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축제이다. 강릉시 남대천 변을 중심으로 제례, 단오굿, 관노가면극 등과 같은 지정문화재 행사는 물론 공연, 체험행사, 전국 최대규모의 난장이 펼쳐진다. 강릉단오제는 지난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5년에는 문화적 독창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출처 : 네이버 축제정보)


금년 단오제는 3년 만의 대면 행사로 5월 30일부터 6월 6일까지 개최되었다. 형의 촬영장소는 단오굿 공연이 열리는 남대천변 단오제단이었다. 단오굿 공연에 나오는 어린 무당이 주인공인 다큐를 찍고 있다고 했다. 10시에 단오제단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강릉대도호부에서 남대천으로 향했다. 걸어서는 15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대도호부가 있는 명주동에서 단오제단으로 가자면 남대천 제방으로 올라서서 다리를 건너야 한다. 요즘 뜨고 있다는 예쁜 명주거리를 지나 남대천 제방으로 올라서는데 펄럭이는 축제의 깃발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들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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