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럭이는 깃발은 그곳의 풍경에 대한 뚜렷한 암시였다. 제방에 올라서자마자 남대천이 한 눈에 들어왔고 천변 양쪽에는 하얀 천막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팔도의 장똘뱅이들이 다 모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몸을 사리고 있던 사람들이 다 강릉에 왔다. 바야흐로 코로나의 끝이구나. 하늘에 떠 있는 촌스런 애드벌룬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사람들은 이렇게 미친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구나. 나는 나랏님도 아니면서 축제장에 몰려든 백성들을 보면서 뭉클했다. 우연히(혹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축제장을 방문한 나랏님이 들뜬 백성들의 얼굴과 산뜻한 발걸음을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연출해서 선전하면 어떨까. 너무 북한스러운가. 60~70년대 느낌인가. 상상은 자유이므로 머릿속으로 잠시 구성, 촬영, 편집, 상영을 단박에 끝냈다. TV를 너무 많이 봤다.
형을 만나기로 한 시간이 조금 남아서 축제장을 둘러 봤다. 이불장이 크게 열렸는데 알고 보니 단오제는 이불장이 유명하다고 한다. 이불 사실 분들 참고하면 좋겠는데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더불어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지방의 축제장이라면 있을 모든 것이 있었다. 이것저것요것그것, 안 파는 거 빼고 다 파는 식당과 야바위 겨우 면한 총쏘기, 공 던져서 맞히기, 다트 던지기, 화살 쏘기 등등의 게임을 할 수 있는 좌판이 성업중이었다. 미니 놀이공원은 당연히 와 있었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동춘써어커스단이 절찬리 공연중이었다. 그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 지방의 특산품과 공예품이 빠질 수 없고 세계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싼 맛에 돈 쓰고 가라고 생활용품, 옷, 악세사리,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 주인장들도 넘치는 손님에 달뜬 표정이었다. 딱히 먹을 거 없고 살 만한 것도 없었지만 사람이 사람을 얼굴과 얼굴로 직접 만나는 장이 열린 것 만으로도 좋았다. 어깨를 부딪히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누구하나 찡그리는 사람이 없었다.(한 두명은 있었겠으나) 연어가 돌아오는 것으로 유명한 남대천에 사람들이 돌아왔다.
강릉 커피 협회가 운영하는 천막에서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를 한 잔 샀다. 드디어 커피 영접. 강릉, 축제, 커피. 행복이 뭐 별 거 있나. 눈물겨운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K형이 동료 한 명과 함께 무거운 가방을 들었다기보다 온 몸에 칭칭 둘렀다는 표현이 적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같이 다니는 분은 사진작가가 본업인데 가끔 형의 일을 돕는다고 한다. 삼각대를 세운 뒤 카메라를 세팅하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영상에는 오디오도 중요한 만큼 고성능 녹음기를 수음이 잘 되는 곳에 별도로 설치했다. 카메라 두 대 정도를 켜놓고 그들이 하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 무녀들이 단오굿 공연하는 장면을 시간의 흐름대로 그대로 담는 일이 전부였다. 카메라를 짐벌 위에 올리고 다이내믹하게 출연자를 쫓아 다니며 찍는 장면도 없었고 인터뷰를 따는 일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단오굿 주최측의 기록영상을 찍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단오굿 공연장 풍경의 일부분처럼 녹아 있었다. 뭐라도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 하고 눈에 불을 켜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실제 굿과 공연이 묘하게 합쳐진 광경을 잘 감상하기만 하면 됐다. 촬영현장을 구경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는데 현장은 느렸고 심심했고 어디 가서 호사가처럼 전달한 특이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새삼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지루한 속도로 아무런 연출도 없이 기약도 없이 그저 묵묵히 담아낸 화면을 이리 엮고 저리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생활을 10년 간 견디고 버티며 촬영한 다큐가 녹턴이라는 영화이고 그 작품은 형에게 국제영화제 최우수상 수상 감독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촬영현장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단오굿 구경 온 관광객의 역할에 충실했다. 특히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으니까. 우리의 마음 속 한 구석 어딘가에는 기복신앙이 살아 있지만 정식으로 하는 굿을 본 적도 없고 굿 공연은 더더욱 처음이었다. 사물놀이 패의 연주에 맞춰서 무녀들은 순서를 바꿔가며 굿을 했는데 국악 판소리 공연과 굿 공연의 경계가 어디인지 잘 구분하지 못했다. 각 분야의 종사자들이 알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흥겨운 공연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넣으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굿이면 어떻고 판소리면 어떤가. 이러면서 속으로 무식한 티를 냈다. 저렇게 찍은 화면이 과연 형이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으로 쓰일까 싶을 만큼 똑같은 풍경, 똑같아 보이는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강릉에 온 김에 만날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