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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우지렁이 Aug 03. 2024

200만 원으로 시작하는 버킷리스트

['지렁이 죽'을 준비하기] 200만 원 인생 (4/4)

200만 원으로 시작하는 버킷리스트

이 정도까지 왔으면 눈물이 날 법도 한데. 먹고 있는 약 때문인지 울고 싶어도 눈물도 안 나오게 된 지 오래다.


돌이켜보니 엄마, 아빠도 나를 낳고 꽤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딸이라는 살가운 맛도 없이 무뚝뚝하고 천방지축에 맨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선머슴 같은 아이. 엄마들이라면 응당 가졌을 예쁜 딸 꾸미기에 필요한, 목티와 스타킹 등 몸에 달라붙는 옷은 질색을 하는 까다로운 아이. 방실방실 웃는 딸이 아닌 낯도 엄청 가리고 친구도 없는 우울한 아이.


그 아이는 공부도 안 하고 숙제도 안 해가더니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커리어도 망하고 연애/결혼/출산 전부 포기한 못난 어른이 되어버렸다.


생계도 친구도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삶의 목표였던, '아빠의 임종 때에 괜찮은 직장을 다니고 있을 것.' 미션도 클리어했다. 이제 더 이상은 굳이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나 같은 쓰레기가 괜히 한자리 차지해서 직장 동료들에게 피해까지 끼치면서 목숨을 연명해야 할 이유도 이제는 없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뛰어내릴까?'


높은 층고 통유리창 옆에 바짝 붙어있는 침대. 그곳에 누워 내려다보며 매일 생각했었다.


'이대로 도르르 굴러떨어져 죽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물체를 통과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니다. 대신 창문 하나를 열면 바로 뛰어내릴 수 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떨어지는 동안 어떤 기분일까?'


몇 번이나 창문을 열고 다리를 창틀에 걸었다가 내려왔었다. 나를 내려오게 했던 생각 한 가지.


'아빠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된다.'


버텨야 했다, 그때는. 그리고 지금은, 이제 더 이상 버텨낼 필요가 없다.


'집에 가면 바로 뛰어내려야겠다.'


어디까지 왔을까. 잠시 눈을 떴다. 이제 버스는 내가 아는 동네로 진입했다. 기장에서 신혼부부를 유치하기 위해 지은 신축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왕복 2시간씩 걸어 다녔던 공장이 보인다. 이제 다 왔다. 저 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기장 시장이다. 그리고 나는 곧. 죽는다.




여태 죽고 싶을 때마다 주로 손목이나 목을 긋고 지쳐 잠이 들었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칼질을 해봤자 죽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목을 메봤다. 아프기는 정말 더럽게 아픈데 빨리 죽지도 못하고 살아나서 두 번 다시 도전하지는 못하겠다.


수중에 단 돈 500원도 없던 때에 투신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마포대교도 올라가 봤다. 익사도 무섭고 무엇보다 나의 투신 장면을 배경으로 셀카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소름 끼쳐 돌아왔다. 핸드폰을 켜보니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투신하려고 대기하기 직전에 생각나 작별 인사를 했던 부산 친구가 신고를 한 것이었다.


자살에 실패할 때마다 생각했다. 어떻게든 자살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집 안에서 죽자니 집주인한테 피해가 가고. 집 밖에 죽자니 행인들에게 피해가 가고 역시 그 땅 주인에게도 피해가 간다. 이도 저도 못 하겠어서 차에 치여 죽자니 차 주인에게 생길 트라우마는 어쩔 건가.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하나하나 다 신경 써주지는 못하겠다. 당장 내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 삶에 미련도 없고 세상에 내가 필요하기는커녕 피해만 끼치고 있다. 그래, 너무 오래 버텼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았다. 나도 더 이상 살 필요도 이유도 가치도 없다. 무려 17층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다.


내가 지금 당장 죽는 것이 가장 피해를 덜 주는 일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 현재를 포함해 앞으로 줄 피해보다 지금 당장 여기 아파트 주민들에게 주는 피해가 적을 것 같다. 같이 사는 엄마랑 남동생? 엄마는 상관없고 남동생도 별생각 없어 보인다.


'나의 죽음에 슬퍼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심지어 나조차도.'


죽음의 버스는 빠르게 내달려 벌써 우리 동네로 진입했다. 2분 내로 버스에서 내릴 예정이고 5분이면 멀미 나는 몸과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집으로 가서 내 방 창문을 열고 몸을 앞으로 기울일 수 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7분.


'이렇게 플랑크톤, 박테리아보다 못한 삶만 살다가 이렇게 끝까지 피해만 끼치고 가는 건가.'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5분.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와서 먹먹하다. 하지만 다리는 습관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리해 보자. 여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악착같이 모았다. 컵라면과 결식이 주식이었고 이제는 그렇게도 싫어했던 김치조차 내게는 사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게 남은 게 뭐지? 아무것도 없다.


장례 비용이 2천만 원은 든다던데. 장례비용은 최소한 모으고 죽어야겠다던 다짐도 사회에 내던져진 후 10년 동안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금액이라 어느샌가 포기한지 오래다. 장례비용조차 포기한 인생.


돈, 돈, 돈, 돈.


그래, 내 인생은 오로지 '돈'이었다. 그렇게 평생 돈타령을 했는데 그러면 지금 남은 돈은 얼마지? 문득 궁금해졌다. 은행 어플을 켜 잔고를 확인했다. 200만 원. 내 통장 계좌에 찍힌 돈은 고작 200만 원이 전부였다.


통장 잔고를 보니 어이가 없다.


10여 년을 노력했는데 200만 원이 전부라니. 먹고살기 급급해서 일만 하고 살았는데도 이게 전부라니. 이 돈이면 장례 비용의 10%밖에 되질 않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재산.


그러고 보니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깝다. 못 해본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자니 억울할 것 같다. 이 정도 돈이면 큰돈도 아니니까 금방 다 쓸 것 같다.


'좋아. 이거 다 쓸 때까지만 살고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면, 그때 죽자.'


그렇게 전 재산 200만 원, 월급 200만 원 인생의 목숨 잔고 카운팅이 시작되었다.


현관문 앞이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집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삑-. 삑, 삑, 삑, 삑. 띠리링-.'


여느 때와 다르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한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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