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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우지렁이 Aug 25. 2024

공주 이야기

초단편소설

#1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잠에 들기 싫어 자주 우는 내게 어마마마는 늘 여러 나라의 공주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마법의 문장을 들으면 나는 항상 바로 잠이 들곤 했다.


‘나도 공주니까 당연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




#2


“으아아아앙~”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


“...”


성장과정 내내 들은 레퍼토리다. 공주가 울면 아바마마는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낸다고 하신다. 그러면 공주는 ‘뚝.’ 울음을 그쳤다. ‘도대체 바보 온달이 누구시길래 자꾸 시집을 보낸다고 하시는 걸까?’ 그가 궁금하다.




#3


세월이 흘러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아바마마가 말씀하셨다.


“공주야, 내 너를 위해 친히 신랑감을 구해놨단다.”


“온달 님을 데려오신 건가요?.”


공주의 당돌함에 아바마마께서 적잖이 당황하신 모양이다.


“무어라?!”


“아바마마께서 제게 항상 말씀하셨지요. ‘바보 온달과 결혼하라’고요.”


“내가 어찌 우리 귀한 공주를 바보에게 시집보내겠느냐. 이 아비가 구해둔 신랑감과 결혼하거라.”


“어떻게 한 나라의 왕께서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됐습니다. 내 남편, 바보 온달을 찾아가겠습니다.”


그 길로 공주는 궁을 나섰다.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미래를 알고 있기에 발걸음에 주저함이 없다. 공주는 항상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테니까.




#4


평강공주가 궁을 나서자 아바마마가 한숨을 쉬고 또 다른 공주인 내게 말씀하셨다.


“공주야, 사실 너는 내 혈육이 아니란다. 네가 아주 어렸을 적에 재상이 내게 부탁한 아이란다.”


“?!!!!”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충격에 쓰러지려는 나의 몸을 궁녀들이 부축해 준다.


‘내가 왕의 자식이 아니라니. 내가 공주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나는 행복할 수가 없잖아.’




#5


궁녀들의 부축으로 간신히 서있는 내게 왕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그런데 너의 친부모가 너를 찾는다고 하는구나. 마침 너의 친부모도 왕족이라 하니 너는 가서 네 친부모가 점지해 주시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다행이다. 나는 여전히 공주다. 타국의 공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의 공주가 아니다. 공주라는 직위가 중요하다.


공주님들은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고 했다. 나도 비록 이 나라의 공주는 아니지만 친부모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공주다. 나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공주라는 직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궁녀들을 물리고 두 다리로 왕 앞에 섰다.


“말씀 받들겠습니다. 전하.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에게 큰 절을 올리고 나의 친부모를 찾아 떠났다. 나의 이름은 바리공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공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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