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됐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잘못됐지.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리며 살아온 일수보다 이미 압도적으로 많은 인생 복기 횟수가 한 번 더 추가되었다.
나는 애매하게 가난한 종갓집에서 큰 딸로 태어나 가정폭력을 겪으며 자랐다. 떼를 쓰는 법보다 포기하는 법을, 없는 살림의 맏이로써 원치 않는 양보를, 살기 위해 부당함을 참고 또 참는 법을 먼저 배웠다.
집에서의 기억은 티브이와 화풀이가 전부다.
아무도 없는 낮에는 거실 소파에 누워 애니메이션을 보고 가족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면 먼저 방 안에 숨어든다. 밤에는 문틈으로 다른 가족들이 보는 티브 프로그램을 훔쳐본다.
엄마의 발걸음이 가까워지고 멀어짐에 따라, 청소기가 작동하고 꺼질 때마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마음의 준비를 하다 안심하곤 했다. 그렇게 방 안에 숨어 눈칫밥을 먹으며 성장했다.
엄마가 방문을 열면, 거의 확정적으로 매를 맞았다. 매타작이 시작되면 본능적으로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애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울면 운다고 더 맞고, 안 울면 안 운다고 더 맞았다. 어차피 맞을 거라면 안 우는 편이 효율적이다. 괜히 소리 내다가는 힘만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문/이과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 정말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이지만 그림은 돈이 많이 든다. 비교적 저렴한 문/이과로 눈을 돌렸다. 수학과 과학을 잘하고 간단한 가전 수리도 종종 하던 나였기에 기계공학과도 괜찮아 보인다.
한 발. 가장 좋아하던 그림에서 멀어졌다.
2학기에 분반 수요 조사를 했다. 확정은 아니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문과에 체크했다. 학비가 가장 저렴하다는 이유였다. 수요 조사 이후 '역시 이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희망 분반은 그대로 확정 분반이 되었고 나는 입도 한 번 벙긋해보지 못한 채 엉겁결에 문과 학생이 되었다.
두 발. 차선으로 좋아하던 이공계열에서도 멀어졌다.
대학 2학년에는 중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적성도 맞지 않고 전공을 살릴 생각도 없으니, 대학을 다닐 시간에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금전적인 측면에서도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학점이 형편없더라도 대학교 졸업증이 있고 없고 차이도 크고, 국립대 학벌을 버리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설득해 주셨다.
그렇게 그림과 기계를 좋아하던 학생은 상경 계열 졸업생이 되었다.
엄마들의 흔한 말씀, "우리 애가 하면 잘하는데, 안 해서 문제지.“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하면 다 잘하는 애' 타이틀이 퍽 마음에 들었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엄마에게 영원히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1등을 할 자신이 있는, 안전한 일들만 하기 시작했다. 해본 적이 없어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일들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시도하지 않는 삶은 20살이 되자마자 지인의 권유로 해본 멘사 테스트에 통과하고 더 단단해졌다. 이제 '멘사 회원'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었으니 더더욱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 혹여나 최고의 성과를 내지 못할 때는 '멘사 회원인데 그것도 못해?'라는 말이 따라다닐 것 같다. 그렇게 새로운 일들을 피하고, 그나마 자신 있던 그림도 차선이던 이과 공부도 멀어지며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겁 많고 무능하면서 자존심만 센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