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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민 Oct 01. 2023

잊기 싫다는 마음, 그럼에도 잊고 싶은 마음

편지 그리고 조금은 자랑

브런치를 오랜만에 열었다. 눈 감았다 뜨니 몇 달이 흘렀다. 생각해 보면 그 사이 참 많은 일도 있었고 많은 것들을 했다. 하나하나 다 생생히 기억나면 흘러간 시간들이 더 소중해질까.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사흘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단다. 며칠 전 ‘망각곡선’ 이론이라고 기억력에 관한 실험과정을 책에서 읽었다. 사람들은 한 달만 지나도 기억한 내용의 80% 가까이를 잊어버린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이 사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방금 책을 뒤져봤다) 그 책에선 결국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일어나지도 않을 심각한 걱정들은 어차피 며칠 뒤면 잊을 일이니 걱정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인데 나는 왠지 좀 슬펐다. 최근엔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많아서 그런가?

간직하고 싶은 순간의 모든 감각과 감정을 담아둘 수 있는 캡슐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을 한 3초 정도 360도 생생한 VR화면에 담아서 그때그때 꺼내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깎이고 흐려지고 색이 바래서 애써 그때의 사진을 꺼내보고 남겼던 기록들을 찾아서 한참을 들여다볼 필요 없이. 아! 생각하기도 싫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말끔히 없애버리는 버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래서 우리는 적당히 망각하는 동물이 되었구나.

브런치를 오랜만에 온 건, 어쩌면 그동안 쏟아낼 곳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도 못 만나고 훌쩍 떠나버릴 수도 없을 땐 이렇게 꾹꾹 눌러서 대충 포장도 한 감정을 브런치에 끄적거리곤 했는데, 최근엔 휴가도 다녀오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서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했거든요. 할 말 총량이 맥스가 되면 짧은 시간에 깊이 털어놓을 수 있는 브런치에다가 살짝 비워놓고 갔는데 그 총량이 도무지 절반도 쌓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핑계 대는 거 안좋아하는데 사실 이건 핑계가 아니고 자랑이랍니다 ㅎㅎㅎ 그만큼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어요. 어제는 제발 이 무탈함이 이 행복함이 오래가길 기도했어요. 몇 달 전만해도 요동치는 배처럼 불안하고 가라앉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딱히 대단한 계기도 없이 전 지금 행복합니다. 어떤 구간을 지나고 있을지 모를 여러분에게도 행운을 빌어요. 분명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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