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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Jul 03. 2019

우리가 우리일 때

#브런치무비패스 질 를르슈 감독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리뷰

*이 글은 질 를르슈 감독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꽤 내향적인 사람이다. 구태여 '꽤'라는 부사를 붙인 이유는 사람한테 치여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면 침대에 기어가 홀로 시간을 가져야 하는 내향인이지만, 어느 날에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상처를 치유받아야 할 만큼 퍽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피로를 부르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편에 서있다. 나만을 위한 공간과 휴식이 필요한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때만 얻는 시너지가 있다고 믿는다. 딱딱하게 가로막힌 벽이나 침대 머리맡에 놓인 인형에 아무리 떠들어댄들 내 고민과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질 를르슈 감독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공식 이미지.

질 를르슈 감독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는 각양각색 캐릭터가 등장한다. 우울증에 각종 지병까지 앓고 있는 2년 차 백수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과 무엇 때문인지 항상 예민하고 화가 가득한 로랑(기욤 까네). 파산 직전에 놓인 천진한 사장님 마퀴스(베누아 포엘부르데)와 히트곡조차 없는 꿈 많은 로커 시몽(장 위그 앙글라드), 매번 누군가에게 당하고 뜯기는 티에리(필리페 카테린느)까지. 하나 같이 삶이 고달프고 애잔한 남자들이다.


흔히 '오합지졸'이라고 하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모자란 이 남자들은 함께 수중 발레단을 꾸리면서 매주 수영장에서 재회한다. 매일을 고달프게 살더라도, 누군가는 그들을 비웃으며 무시할지라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수중 발레를 이어간다. 한 명 한 명 모두 자신이 마치 당대 최고의 무용수가 된 듯 착각에 빠져 연습을 마치지만 지켜보는 이들의 눈엔 그저 애처로운 몸짓으로 허우적거리는 중년 남성에 불과하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질 를르슈 감독은 끊임없이 위트를 던진다. 적절한 타이밍에 강약 있게 배치된 위트는 그들이 그리는 고군분투기를 보는 내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가 어느 순간 손에 힘을 꾹 쥐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질 를르슈 감독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공식 이미지.

수영장에 모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합을 맞추고 나면 그들은 탈의장에 앉아 자신의 가정과 직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신세한탄을 한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던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순간이다. 다만 신세한탄에 진지하게 위로를 건네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후벼 파는 농담만 던질 뿐. 자신의 낙오, 과오를 묵인하거나 위로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할퀴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이들 덕분에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안에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능력을 얻은 게 아닐까.


개개인 모두 삶이 고달픈 남자 수중 발레단과 삶이 위태로운 두 선생님. 그들은 지금까지의 자기네 삶과 다른, 새로운 도전이라는 꿈에 취해 대뜸 세계 선수권 대회에 프랑스 대표로 출전 등록을 마친다. 일종의 현실 도피이자 일탈인 셈이다. 이후 조급해진 팀원들과 두 선생님은 그들이 우리로 존재할 수 있도록 쉼 없는 연습을 이어간다. 마침내 대회 당일, 우스꽝스러운 중년 남성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일 때 빛난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질 를르슈 감독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공식 이미지.

우승을 거머쥔 프랑스 대표 남자 수중 발레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자축을 한다. 그들은 마침내 우리로서, 그리고 우리 안에 속한 개개인으로서 새로운 시작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후 현실로 돌아온 그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뉴스나 신문에 그들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지도 않고 그들은 알아보는 이도 없다. 다만 그들은 안다. 이미 자신이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그리고 비로소 가족과 지인들이 자신의 삶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있음을 말이다.


장 를르슈 감독은 수영장에 모인 남자들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사실 영화가 그려내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은 고달프고 애처롭다. 때로 이 현실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모두 털어놓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해와 위로를 바라기란 더더욱 어렵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속 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 이럴 때 우리는 오히려 내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털어놓거나 전혀 다른 제3의 장소와 구성원을 만나며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을 택하곤 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고독과 무기력, 좌절 따위에서 비로소 빠져나올 희망을 본다. 마친 프랑스 대표가 된 남자 수중 발레단이 떠오르는 희망을 보며 감격에 젖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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