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쓰는 자아와 쓰고 싶어 쓰는 자아의 분리
아침에 책상 앞으로 출근한 뒤 하는 일이 죄다 쓰는 업무다. 본업이 매거진 에디터면 쓰는 일에 대해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적응해 타협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하면 사실 크게 할 말은 없다. 기사를 쓰고 돈을 버는 직업인데 기사를 쓰는 일이 지겹다고 하면 지나치게 매너리즘적인 태도니까. 매거진 에디터가 기사만 쓰는 직업이면 참 좋으련만 , 안타깝게도 매번 매 순간 매기획 매회의 마다 써야 하는 글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 양은 방대하다.
어젯밤, 회사 메일 앱으로 쏟아지는 달갑지 않은 편지 세례에 앱 알림이 살려달라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나도 지쳐.
나의 고유한 저녁 시간을 방해하려는 익숙한 노이즈에 스마트폰을 안방에 집어던지고 메일 앱이 깔려 있지 않은 아이패드로 신나게 브런치를 써 내려갔다. 얼마 전에는 아이패드에서 카카오톡까지 지워버려 완벽한 차단이 가능해졌다. 일로 쓰는 자아와 쓰고 싶어 쓰는 자아의 완벽한 분리랄까.
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매거진 에디터로서 보통 하루의 시작은 이렇다. 쓰고 싶어 쓰는 자아로 사는 와중에 누군가 일로 쓰는 자아의 메일을 처리해주면 좋으련만, 그럴 리 만무하다. 그리하여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메일 내용을 훑기 시작한다. 메일로 답변 가능한 일부터 처리하기 시작해 키보드를 연신 두들겨대면 오전 시간이 끝나고 배꼽시계가 울린다. 점심을 먹자마자 제안서나 의뢰서, 원고 청탁서 등을 첨부해야 해 미처 답하지 못한 메일에 일일이 대응하고 나면 어느 날은 저녁 먹을 시간이 돼 있기도, 어느 날은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내일 보내겠다는 사죄의 전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담당자나 작가와 전화를 하고 브랜드 미팅을 하고 기획회의를 한다. 매달 동일한 콘텐츠를 만들면 몇 가지 폼으로 돌려막기가 가능할 테지만 기획 주간에 나는 또 신나서 새로운 기획을 짜버렸다. 일로 쓰는 자아와 쓰고 싶어 쓰는 자아의 완벽한 분리란 없는 걸까. 이럴 땐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자아를 뜯어말리고 싶기도 하다. 브랜드에 제안서를 넣고 진행 여부가 판가름 나면 다음은 화보나 리뷰 촬영을 위해 사진 촬영 의뢰서를 작성한다. 제안서가 간단명료할수록 좋다면 의뢰서는 디테일할수록 원하는 결과에 가까운 퀄리티가 된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원고 청탁서까지 작성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와 진짜 이럴 거면 내가 쓰지!!!!”
이럴 땐 매거진 에디터 경력이 전부인 내 초라한 이력이 유난히 구슬퍼진다. 그렇게 벌.써. 마감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밀린 원고량을 감당하지 못해 밥시간을 미루고 화장실을 참아가며 일주일 만에 원고를 모두 클리어한다. 쓰는 병 중증인 나는 매일 한 두 가지 원고를 마감하며 작은 성취를 이루고, 마침내 모든 원고를 클리어했을 때는 마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처럼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때문에 아무도 내 노고를 몰라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번 달도 잘 쓰며 잘 살아냈다, 스스로를 위안하는 일종의 의식을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치르고 있다. 쓰고 싶어 쓰는 자아 때문에 피곤해진 일로 쓰는 자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도 더해서.
스스로를 위안하는 일도 잠시, 디자인팀에서 모든 원고의 디자인 작업을 마쳤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는 꼬박 이틀에 걸쳐 지면 교정과 PDF 교정을 봐야 한다. 그렇게 살아낸 한 달의 데이터를 인쇄소에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이 말로 동료들에게 이번 달의 인사를 전한다.
"이제 정말 텍스트는 쳐다보기도 싫다. 집 가서 넷플릭스나 정주행 해야지."
“선배, 쉴 때는 뭘 하세요?”
“글을 쓰지.”
순간 후배의 눈에서 미친년이라는 단어를 봤다. 그 대답을 하고 집을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를 쓰는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진단 내렸다. 이 생각이 증발될까 하는 조바심에 브런치를 열어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또 생각했다. 나 정말 제대로 미쳤구나.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지하철에서 혼자 허허 거리며 웃었다. 이런 건 약으로 어떻게 안 될까. 검색창을 열어 이것저것 검색해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 후로 몇 번 더 그런 상황을 겪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불치병이구나, 가 아니라. 사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니 나는 그저 일로 쓰는 자아와 쓰고 싶어 쓰는 자아가 분리되지 않을 뿐이었다. 글을 쓰는 일이 좋아 글 쓰는 직업을 택했는데, 쓰고 있는 류의 글이 내 글 욕구를 채워주지 못할 뿐이다. 이 문장을 쓰고 보니 또 글, 글, 글이구나.
어차피 고치지 못할 병이라면 쓰고 싶어 쓰는 자아에게 조금 더 투자하기로 했다. 물론 일과 완벽히 분리한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가장 먼저 아이패드를 브런치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방해 요소가 되는 앱들을 지웠다. 그리고 새 기획의 즐거움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매일 쓰고 싶어 쓰는 자아에게 30분 이상의 시간을 주고 있다. 모든 병이 처방을 내린다고 바로 좋아지지 않듯, 여전히 이번 마감을 하는 와중에도 다음 달엔 이런 기획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곤 한다. 다만 이제 병으로부터 벗어날 약을 얻었으므로 나는 일로 쓰는 자아와 쓰고 싶어 쓰는 자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19년 12월 19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