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을 포기할 때
결혼으로 오래 살던 집을 떠나면서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들을 정리했다. 10년도 더 된 책상 한편에 딸린 책장과, 넘쳐나는 책으로 3년 전 여름 급하게 장만했던 새 책장들에 나의 가장 열정적이었던 10대와 20대가 얼기설기 뒹굴었다.
“전부 버려야지.”
이미 온기가 가실 대로 가신 냉랭한 방에 들어서면서 나는 호언장담을 했다.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고. 두 손을 꽉 쥐면서, 서른을 맞이하는 새로운 출발점에서는 덜어내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호언장담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들었다.
소설가를 꿈꾸던 10살 소녀가 용돈을 모아 처음 샀던 소설 책부터 그 꿈을 지지해주던 수많은 이가 선물로 남긴 책까지. 더는 읽지 않아, 혹은 읽지 않을 것 같아 한쪽 구석에 빼놓은 책이 쌓여갔지만 그중에서 막상 진짜로 떠나보낼 수 있는 책은 1/3도 되지 않았다.
어느 책은 밑줄을 긋다 못해 구구절절 좋은 문장이 앞으로 가는 길목을 막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 끝에 ‘필사 책’이라고 큼지막하게 남긴 문구가 이게 다 추억이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너는 데려가야지. 또 어떤 책은 나의 열여덟 생일에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가 머리말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빼곡하게 적어놓은 편지가 함께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그 친구의 열여덟 진심이 가져갈 책과 버릴 책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갈팡질팡 하더니 그대로 갈 곳을 잃었다. 그래도 너는 데려가야지. 널 어떻게 두고 가니. 내 열여덟 인생의 전부인데.
열여덟. 남들은 중학교 때부터 몇 종류의 학원을 다니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지만 나는 종종 학교를 빠지고 백일장을 다녔다. 그리고 친구들이 학원으로 떠나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공책을 펴고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곤 했다. 그대로 혼자 백일장 주제를 내고 그 주제에 맞는 단편을 쓰는 연습을 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을 비롯해 친구들까지 전국의 크고 작은 백일장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면 내게 문자를 보내거나 메신저가 되어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부터는 아예 알림문이 게시판에 달리기도 전에 내 책상에 먼저 놓이기 시작했다.
“나 글 쓰는 법을 좀 배우고 싶어.”
여러 백일장을 전전하다 처음으로 모 대학 전국고교백일장에서 가작을 받던 날, 나를 홀로 키우던 아빠에게 다시 떼를 썼다. 아빠는 소설가가 꿈이라 말하고 다니는 나를 딱히 제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배고프게 살아갈지도 모를 예술가를 하겠다는 딸을 적극 지지하지도 않았다. 소설가가 되고싶어, 이런 것들을 해보고 싶어, 라는 그동안의 지나가는 말들과는 결이 다름을 아빠는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막연한 허상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당사자는 기대와 꿈에 가득 찼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어려운 가족에겐 희망이 곧 고문에 가까웠다. 무언가 해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던 아빠는 아주 낮게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아빠는 좀 더 생각해보자는 말을 끝으로 담배 두 대를 연속으로 태웠고 나는 묵묵히 아빠의 대답을 기다렸다.
“미안하다.”
벙어리가 되었던 아빠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드디어 입을 뗐다. 손에는 필립 체스터필드의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그 책의 첫 번째 장에는 ‘사랑하는 빈에게’라는 문구와 날짜,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미 평평하게 박혀버린 아빠의 결단을 손 끝으로 어루만지면서 아무 말 없이 안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끝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상의 문턱은 높았고 현실 속 나는 한 없이 작았다. 아빠는 최선을 다해 이상의 문턱을 낮춰주고 싶어했지만, 그때 나는 손에 잡힐 것 같았던 꿈이 이미 신기루처럼 저 멀리 흩어져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글 쓰면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나요?”
입시 상담을 하던 담임 선생님이 손으로 펜을 돌리던 동작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당시 국어를 담당하던 그는 마침 문예창작과 지원자를 위한 글쓰기 학원에 대해 설명하는 참이었고 내가 한 말이 정말 나의 진심인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문 내게 그는 방송작가와 기자, 카피라이터도 돈을 안정적으로 벌면서 글을 쓰는 좋은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혹여 다른 일을 하더라도 네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날 이후 방송작가가 될 거야, 라고 떠들고 다녔다. 일종의 나를 향한 위로이자 그 위로를 방해할 누군가의 질타에 대한 방어기제였다. “거봐 소설가는 배고프다고 했잖아.” 그런 류의 질타는 이미 열여덟 생을 사는 동안 아니, 소설가를 하겠다고 떠들고 다닐 때부터 익히 들어온 말이었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마치 더 좋은 직업을 꿈꾸기 위해 소설가라는 꿈은 접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용돈이 모일 때마다 공지영과 신경숙의 책들을 사모았고 여전히 그들을 동경했다.
아직 소설가라는 이상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 아빠는 월급날이면 새로운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매달 자신의 표식을 남긴 채로. 그 표식은 “내게 이만큼이라도 꼭 해주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빠 목소리를 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을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책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중에는 열여덟의 나도 지금의 나도 읽지 않을 책도 몇몇 있었다. 그 책들을 버려야 할 책무덤에 옮겨 놓고 나는 한참 생각했다. 진짜 버려도 될까?
아빠는 책을 사면 달력을 찢어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새 하얀 뒷면으로 책을 싸서 읽었다. 덕분에 나는 아빠가 매번 어떤 책을 읽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빠가 집에 남겨 놓고 떠난 새 하얀 표지를 가진 4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책이 세월의 풍파를 혼자 맞은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우리 가족을 향한 아빠의 표식 옆에는 그즈음 신문 광고를 오린듯한 몇 개의 종이 쪼가리가 끼워져 있었다. 책 광고였다. 아빠는 매달 책을 선물하기 전까지 신문이 추천하는 책들의 정보를 모아 왔던 걸까. 아빠가 선물하지 못했던 책의 제목들을 보다가, 나는 아빠의 표식이 남겨진 책들을 다시 데려가야 할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데려가야겠어. 이게 몽땅 다 나의 시간이지 뭐야.'
나는 열여덟 아빠와의 그 사건 이후로 소설가라는 이상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미 나는 깨달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어쩌면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라고. 이후 방송작가와 카피라이터, 언론 고시를 준비해야 하는 기자를 탐닉하다 결국에는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이 가장 빨리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매거진 에디터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책을 정리하던 날처럼 내 생이 소설가라는 꿈과 완벽히 결별했다고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책무덤과 데려가야 할 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언제든 길을 틀 수 있는 여지를 뒀던 것처럼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소설가라는 꿈을 마음에 묻지 않았다. 기사 쓰는 일이 지칠 때면 브런치를 열어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 내려 가곤 하는 것처럼.
2019년 11월 30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