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책상으로 출근한다

재택 마감 노동자의 하루

by 김진빈




이제 막 자정을 넘겼으니 오늘로써 재택 근무자 일주일 차, 정확히는 재택 마감 노동자 일주일 차다. 미팅이나 인터뷰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나는 이제 매일 내 방 책상으로 출근한다.


겨우 정신을 차려 무거운 몸을 씻어내고, 억지로 화장을 하던 시간에 이제 맨 얼굴로 나가 집 앞 공원을 산책한다. 화장을 할 일도, 누군가에게 보일 내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 입을 옷을 고민해야 할 일도 없다. 가장 편안한 옷을 입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 순위권 차트와 함께 공원을 돌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10시 30분(이 자리를 빌려 우리 대표님이 정한 은혜로운 출근 시간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정확한 출근 시간에 책상으로 출근한다. 사실 늦잠을 자는 날에는 잠옷 차림일 때도 있고, 맑은 하늘에 정신이 팔려 미처 시간을 체크하지 못한 날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그대로 앉을 때도 있다.


이따금 전화나 메신저로 특정 사안에 대해 연락할 일이 아니면 아무도 내 출근 시간을 체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감 노동자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출근이 늦으면 오늘 할 일이 밀리고 그러면 집에서까지 야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감 노동자는 무릇 마감이 닥쳐야 마감을 칠 힘이 난다고 하지만 재택 마감 노동자를 자처(?) 하면서 회사와 그리고 나 자신과 가장 먼저 한 약속이 출퇴근 시간 엄수이므로, 아직까지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오전 내내 전화나 이메일로 피드백이 필요한 일들을 끝내고 나면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건 여전하다. 다른 점은 먹고 싶은 건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 정도다. 그날의 메뉴를 고르고 음식이 만들어질 때까지 동료와 혹은 새롭게 만난 이와 대화를 나누는 대신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요리를 한다. 밥을 먹을 때는 밀린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일은 없어졌고, 원고를 작성하던 화면이 조금 지겨워질 때는 집 나간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빨래를 하거나 밀린 청소를 한다. 오늘은 어느새 시들어버린 화분을 정리했다. 아마도 주말에는 이 화분을 채울 새로운 반려식물을 찾아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일이 지겨워지면 새로운 반려식물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겠지.


오후 내내 나 홀로 노트북과 씨름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 6시에 부쩍 가까워져 있다. 오늘 내 처리할 리스트를 확인하고 할 수 있는 일과 내일로 미뤄야 할 일을 정리한다. 마감이 임박한 일이면 조금 더 야근을 하기로 한다. 에디터라는 직업은 노트북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이 가능한 디지털 노마드에 이상적인 직업이다. 다만, 이렇게 빨리 평화로운 나날이 찾아올지 몰랐다. 에디터 개개인으로 보면 자신의 기사만 마감하면 되지만 조직 단위로 움직여 매달 책 한 권을 완성해야 하니 매거진을 만드는 모두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로 소통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고 서로의 스케줄에 대해 소통이 원활해야 하며 무엇보다, 이 시스템을 회사가 인정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이를 시행할 마음이 없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회사는 대부분 외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소규모 회사이고 모두가 본인 스케줄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실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표가 모두의 편의를 위해 이 시스템을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내 삶은 많이 여유로워졌다. 일이 줄어들지 않아도 시간적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놀라는 중이다. 홀로 글을 쓰니 절로 높아진 집중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심지어 야근을 해도 인상이 구겨지지 않는다. 물론 단점 아닌 단점도 있다. 예를 들면 종일 말할 사람이 없어 그날의 언어를 모두 소진하지 못하면 마트를 가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과 수다를 떤다. 가장 많이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와는 어느새 분리수거 메이트가 됐다. 밖에 나가서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날에는 퇴근한 L군에게 영상 통화를 건다. 그 때문인지 L군은 피로가 누적돼 독감에 걸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아직 마감 기간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 또한 내가 스스로와 약속한 규칙이 잘 지켜진다면 지금보다 더 평온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일도 지각없는 출근을 위해 오늘을 이만 마무리해야겠다.





2019년 4월 5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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