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마감 노동자의 퇴근길
시드니에서 첫 날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날 L군과 S군 그리고 나와 P양은 이제 막 워킹 홀리데이라는, 호주 1년 살이를 시작했다. 우리는 유심을 사기 위해 무작정 호스텔을 나섰다. 높은 빌딩 숲이 만들어 놓은, 어지러운 사각형 길목을 한 시간이 넘도록 돌고 돌았다. 낯선 도시는 시야를 흐리기 충분했고, 낯선 언어는 입을 다물게 했다.
말없이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돌면서, 어릴 적 영어 시간에 배운 block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길을 묻고 답하는 회화 문장으로 기억하는데, 그 복잡한 길을 걷고 있자니 선생님이 왜 우리에게 영어로 숫자를 세는 법과 block을 그토록 강조해 알려주려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누군가 자로 재단해놓은 듯한 도시는 사방이 사각형 덩어리들로 이뤄져 있었다. 우리가 마주 앉은 짝꿍에게 여기서 몇 번째 블록에서 어느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지 몇 번이고 외쳐댔던 일은 사실 이 사각형 덩어리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리라, 머릿속에서 혼자 결론을 지었다.
그날 시드니는 6개월 간 머물렀던 어느 날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단순히 처음이라는 낯섦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각형의 한 변을 이루고 있는 어느 빌딩 앞에는 사각형 펜스가 쳐져있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속속 도착하고 사이렌 소리가 이 도시를 덮을 무렵 경찰은 빌딩 위쪽을 향해 위험을 알리는 말들을 쏟아냈다. 주변은 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제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은 좁아진 길목에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잠시 가던 걸음을 멈췄다. 목젖이 당길 정도로 고개를 쳐들어도 그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 잘 보이지 않는 높은 빌딩이었다. 그렇다고 그 끝에 아무도 없다 하기엔 경찰이 쏟아내는 말에서 조급함이 묻어났다.
몇 주 후 한인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P양은 그날의 전말을 들고 퇴근했다. 자신의 삶을 비관한 누군가 높은 빌딩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더라. 누군가 ~했다더라로 시작한 말은 어느새 사실이 돼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그래서 그가 어떻게 됐는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알 길이 없다. 그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막차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왜 그날을 떠올렸는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나는 이 일이 좋았고, 이 일을 하는 내가 좋았고, 내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 좋았다. 그거면 내가 몸과 시간을 바쳐 이 일을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 직장과 현 직장을 통틀어 3년 반.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누적된 피로와 마감이 주는 예민함은 L군의 한 마디에 눈물을 쏟아버릴 만큼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L군은 이제는 너를 위해 그만 할 때도 됐다, 라는 말을 했다. 이 길이 아닌 길은 전부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가장 민감해하는 말이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L군은 네 몸도 생각해야 하지 않냐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침묵을 지켰고 L군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전화를 끊는 일로 지금은 그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사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는 일만큼 속상한 일도 없다. 위태로운 나는 그저 오늘도 수고했다,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고 아무도 듣지 못하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L군의 목소리가 빠져나간 자리가 찬 바람이 불듯 시렸다. 공허가 우울을 밀고 침실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눈에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의 위태로움을 생각했다. 그때 그는 정말 죽음을 생각했을까. 옥상에서 떨어진다면 정말 죽는 걸까? 그렇다면 누가 가장 슬퍼할까? 공연한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다음 날 나는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냈다.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상사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을 시전 하면서. 나는 이미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져 있었다. 죽음을 생각한 뒤로 무서운 강박에 시달렸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해, 라는 생각이 오히려 죽음을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아, 라는 말이 더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즈음 우울증에 대해 고백하는 책들을 읽고 있던 것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직서는 끝내 수리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먼저 업무가 줄었고 한 달 중 절반을 재택에서 마감을 하는 재택 마감 노동자가 됐다. 빌딩 옥상에서 위태로운 걸음을 옮기는 내게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든든한 구조대가 돼 주었다.
재택 마감 노동자로 일하는 사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아파트 단지를 매웠던 개나리와 벚꽃이 며칠 출근하는 새에 낙화한 걸 보니 곧 여름이 올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공허하고 이따금 울기도 한다. 업무가 줄었다고 해도 어떤 날은 버거울 만큼 업무가 몰리는 날도 있다. 다만 더는 사각형 덩어리들이 지겹게 느껴질 정도로 출근과 퇴근이 지옥 같지 않고, 다음 block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걷는 시간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봄꽃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가늠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시드니 어느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이의 위태로움을 목격했던 그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형체가 없는 그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후로도 나는 줄곧 남의 위태로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나의 안녕에는 유독 둔감했다. 마치 좁아진 골목을 보고 인상을 쓰던, 제 갈 길 가기 바쁜 사람들처럼 앞을 향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마감을 끝내고 유난히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젠가 L군이 말했던 김제동의 말을 떠올렸다. 남한테 안부를 묻듯이 우리는 모두 나에게도 안녕한지 물어야 한다고. 내가 그날을 떠올린 일은 어쩌면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던 내가 보낸 신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게 답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정말 안녕하다고.
2019년 4월 25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