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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Dec 31. 2020

정답이 없는 물음들

영화 <윤희에게>와 소설 <딸에 대하여>

*이 글은 영화 <윤희에게>와 소설 <딸에 대하여> 스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답이 없는 물음이 있다. 누구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거나,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답을 갖고 있는 것들. 결국 둘은 어떤 부분에 있어선 같은 의미겠지만, 이런 물음에 대한 내 생각은 말의 형태로 누군가에게 닿지 않을 때가 많다. 말이나 행동은 때때로 칼보다 쉽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만큼 여러 성향, 가치관, 의견이 존재하며 모두가 나와 같을 수 없다. 우리 세대는 이 불변의 진리를 일찌감치 배웠다. 우리라는 커다란 원 안에 너와 내가 있고, 내가 이럴 수 있다면 너도 그럴 수 있어. 자라는 동안 내내 그렇게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라는 원을 지키며 원만하게 살아가려면 정답이 없는 물음에는 입보다는 마음이나 귀를 먼저 열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2020년대를 30대로 살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의 무게를 알고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임대형 감독 영화 <윤희에게> 공식 이미지.
임대형 감독 영화 <윤희에게> 공식 이미지.


영화 <윤희에게>의 딸 새봄은 그런 시대에 10대로 살고 있다. 개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한 정답이 없는 물음들의 논쟁은 계속되고 트러블은 여전할 테지만, 이전보다 넓은 아량으로 개개인의 목소리를 존중해줄 준비가 된 사회. 반면 엄마 윤희는 그렇지 못한 세상에서 청춘을 보내고 중년이 됐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다녔고 병원을 나오자마자 속죄하듯 오빠의 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윤희의 부모 세대는 고칠 수 있다 확신했고 윤희는 참을 수 있다 믿었다.


불행은 당연처럼 따랐다. 윤희는 자신을 보듬어주지 않는 세상과 트러블 없이 원만하게 사는 방법으로 입과 마음을 닫았다. 그의 부모와 남편 인호 역시 귀를 닫았다. 윤희와 사는 동안 내내 외로움 속을 헤매야 했던 인호는 결국 중년이 다 돼서야 재혼을 택한다. 윤희는 네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인호를 안아주며 그저 “잘 됐다. 축하해.” 한 마디를 건넬 뿐이다. 그 후에도 윤희는 여전히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가두고 산다. 반복되는 하루에 유일한 낙이 전봇대 뒤에 숨어 피는 담배 한 개비일 정도로 말이다. 새봄은 그런 윤희에게 사랑했던 쥰과의 재회를 선물한다.


반면 소설 <딸의 대하여>는 30대 레즈비언 딸을 보는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그린다.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그녀는 윤희의 부모 세대처럼 강경하게 나서진 않지만 딸 그린에게 끊임없이 평범한 삶이 이성과 결혼해 자식을 낳는 일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변할 수 있다 믿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린은 경제적 이유로 여자 친구 레인과 엄마 집에 들어와 살고, 동성애로 해고된 동료를 위해 시위를 나갈 만큼 제 목소리를 똑똑히 낸다. 엄마와 딸 모두 제 목소리를 내지만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임대형 감독 영화 <윤희에게> 공식 포스터.


영화 <윤희에게>의 윤희와 새봄, 소설 <딸의 대하여>의 엄마와 딸은 모두 자신만의 답으로 삶을 살아간다. 윤희가 사랑했던 쥰이 중년의 문턱에서 받은 누군가의 고백을 “혹시 여태까지 숨기고 살아온 게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숨기고 살아요.”라는 말로 단호하게 거절했듯 윤희는 앞으로도 참을 수 있다 믿으며 살아갈 것이고, 새봄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존중할 테다. 그린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테고 엄마는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을 것이다.


결국 누구의 선택도, 누구의 말도 정답이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답을 내놓을  있는 물음에는 애초에 답안이 정해져 있지 않다. 새봄온전히 윤희의 마음,  마음이 향해 있는 방향에만 집중하는 이유도 같다. 새봄은 윤희에게 어떠한 물음도 쥐어주지 않고 그녀의 답이 변하길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닫혔던 윤희의 마음을 그녀 스스로 확인할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를 내도 괜찮다고.


정답이 없는 물음들에는 새봄과 같은 스탠스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지 않는 선에서,  세상 모든 윤희의 정답들이 세상에서 또렷이  목소리를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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