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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Jan 22. 2022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브로콜리너마저 윤덕원과 <싱어게인2> 12호 초식 동물 가수




30대에 몰아닥칠 어떤 일들이 두려워, 20대 후반을 그렇게 치열하게 보냈는지.

좋아하는 일을 두고 괴물이 되지 말아야겠다.



이 문장을 끝으로 나의 20대 메모가 끝이 났다. 쉼 없이 달려도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싱어게인2> 어느 참가자의 말처럼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미래로 가는 길목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 반년 뒤, 이미 늦은 2020년 메모 폴더를 만드는 대신 2019년 폴더의 끝자락에 메모를 덧붙였다. 생각이 많아질 땐 브로콜리너마저를 찾아 듣자. 내 10대의 끝자락처럼. 너무 바빠 2020년 이른 열대야 티켓팅을 포기하고 아쉬운 대로 음원 스트리밍 앱을 켰던 퇴근길이었다.



뒤늦게 <싱어게인2>를 보다가 스쳐 지나가듯 낯익은 모습을 발견했다. 잘 흘러가던 영상을 바로 리와인드했다. 다시 봐도 브로콜리너마저 윤덕원이었다. 물론 그 역시 여느 참가자처럼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12호라는 낯선 이름표를 단 채였다. 좀 전까지 음원 스트리밍 앱에서 흘러나오던 윤덕원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12호의 것이 됐다. 12호는 음악계가 마치 정글 같다고 했다. 자신이 초식 동물처럼 이 정글을 배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 이 정글의 중심에 섰다고.



일상에서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내려간 가사.  위로들을 기교 없는 특유의 목소리로  구절,  구절 진심을 다해 부르는 윤덕원의 진심. 김광진의 <진심> 전주가 시작되고 12호가 노래를 시작하기까지  짧은 순간에 브로콜리너마저가 노래를 통해 보내왔던 수많은 위로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잊진 말아요. 그대의 소중한 재능이 숨겨진 보석 같은 거죠. 언젠가 환하게 빛날 테죠. 꿈만큼 이룰 거예요. 너무 늦었단 말은 없어요. 그대를 지켜주는  그대 안에 있어요. 강해져야만 해요. 언제나  바람이죠.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 모를 위로의 말들을 진심을 다해 불러내려 가는 12호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좋아해서 애쓰는 마음, 그만큼 간절한 진심이  있을까. 수많은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정글의 중심에 서야 했던 초식 동물의 간절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두고 몸집을 부풀려 기꺼이 괴물이 되어야 했던 20 후반의  시간에 대해 곱씹었다. 그때마다 내겐 브로콜리너마저가 있었다. 그제야 2021 여름에 발매한 브로콜리너마저의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같아서> 수록곡들의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유희열의 말처럼 가장 <싱어게인2> 나오지 않을  같은 사람인 그가 정글의 중심부에 스스로 발을 들여야 했던 이유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국 2022 메모 폴더를 열었다. 30대에는 윤덕원처럼. 겁쟁이가 되지 말자. 누군가에게 정글의 중심에  초식 동물처럼 보여도 좋아하는 것을 망설임 없이 하던 때로 돌아가자. 용기   낸다고  인생이 달라지면  얼마나 크게 달라지겠는가. 윤덕원의 말처럼 그냥 조금   실패할  있는 사람이 되면 그뿐인데. 그리고 브로콜리너마저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100-120 종이나 되는 초식 동물이 없다면  생태계는 굴러갈  없다고. 그저 우리는 어떻게든 뭐라도 하면 된다고. 진심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이다.




2022년 1월 22일

Written by Jimbe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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