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덕후인 친구 N은 한동안 다이어리에 쓸 도장을 사 모았다. N은 서울 성수동의 한 팝업 스토어에서 ‘내가 해냄’이라는 문구를 보고 벅찬 마음으로 도장을 바로 구입했다. 그날 저녁 N과 영상 통화를 하던 모두가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빈 종이에 도장을 찍자 나타난 문구는 ‘내가 헤맴’이었던 것. “오히려 좋아.” 누군가 그 말을 외쳤고 영상 통화에 참여했던 모두가 그날부터 헤맴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게 됐다.
8년 만에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빈 문서를 열었다. 잘 짜인 경력직 이력서를 불러와 이력을 리스트업 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8년 동안 어떤 결과물을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기억해 내고 증명하기 위해 몇 번이고 몸 담았던 매거진의 홈페이지와 온라인 채널, 그동안 모아 온 저장 장치의 자료를 뒤져야 했다. 반면 한 번 리스트업을 하고 나니 각각의 프로젝트에 살을 붙이는 과정은 몇 장이 금방 채워졌다. 과정의 농도는 이토록 진했다. 다만 자기소개서는 항목 별로 1000자 이내. ‘내가 해냄’ 도장을 받기 위해선 결과와 성과를 적기에도 빠듯했다.
일주일 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을 포기했다. 대신 빈 문서를 열어 매거진 에디터이자 콘텐츠 에디터로서 걸어왔던 길목마다 ‘내가 헤맴’ 도장을 남겨주기로 했다. 나는 넘어지고, 부딪히고, 깨지는 그 모든 과정에서 실패의 근육을 단련해 왔다. 자동 모드로 사진을 찍던 나는 겁도 없이 카메라가 남겨준 A컷으로 카메라 전문지 에디터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하고 나서야 사진과 카메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은 혹독한 훈련의 동력이 됐고 결국 직접 사진을 찍어 카메라 장비를 리뷰하기에 이르렀다. 실패가 더는 두렵지 않아 졌을 땐 그간의 지난한 시간을 버텨준 단단한 근육들이 디딤돌이 돼 주었다. 종이 매거진이 사양 산업이라 모두가 포기하자고 할 때는 사수 없이 돌파하기 위해 맨몸으로 부딪히며 매 순간 무모한 도전을 했다. 그때 행했던 모든 도전과 헤맴이 지금은 온전한 내 경험치가 되었다.
회사 안에서 크고 작은 도전을 일삼던 나는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로 이름 앞에 붙었던 매체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이름 없이 경험의 시간만으로도 나라는 사람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험 정신으로 여전히 ‘내가 헤맴’ 도장을 손에 들고 매일 작당모의를 하는 콘텐츠 에디터로 살고 있다. 숱한 실패의 경험에서 헤맴이 해냄이 되는 순간에는 늘 성장이 따른다는 사실을 배웠기에.
헤맴은 방법론적 결과만 도출하지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땐 방법만큼 에디터의 태도나 마인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이는 ‘내가 헤맴’ 도장 없이는 정진해 나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나의 헤맴 연대기가 정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과정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헤맴이 누군가가 해냄으로 가는 길에 좋은 동료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반대로 이 글을 통해 누군가 기꺼이 자신만의 헤맴의 길로 들어선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오늘도 콘텐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모두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