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도전>이 <무모한 도전>으로 불리던 시절을 가장 좋아했다. <무모한 도전> 멤버들은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했으며 목욕탕 물을 배수구보다 빨리 빼기 위해 바가지를 들었다. 누군가는 황소와 전철과 배수구 편에 서서 그들의 무모함에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나는 그 숱한 도전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의심보다는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그들은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기 위해 낙하산을 멘 채 공기 저항력을 기르려고 애썼고,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는 이유로 기꺼이 쫄쫄이를 입었다. 그들은 누구나 진다고 여기는 무모한 도전 앞에서도 "아니야, 한 치 앞은 모르는 거잖아."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손에 땀까지 쥐던 열혈 시청자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 앞에 설 때면 <무모한 도전> 멤버들을 떠올렸다. 무언가에 가로막혀 발을 내딛기 망설여질 때면 그들의 메시지를 주문처럼 외우며 스스로를 믿고 무모한 도전을 일삼았다. 기꺼이 쫄쫄이를 입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매거진 에디터가 되겠다,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황소와 전철과 배수구 편에 섰다. 진로 상담을 담당했던 교수님께서는 디지털 콘텐츠 에디터를 추천했다. 매거진 에디터를 하고 있던 선배는 "힘들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조언을 대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도 이미 종이 매체가 사양 산업의 길로 들어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몇 달의 고민, 몇 번의 질책과 회유로 벼랑 끝에 선 나는 무모한 도전 멤버처럼 배수구를 향해 바가지를 들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한 치 앞을 모른다는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생각보다 더 무모한 사람이었다. 한국잡지교육원 면접을 위한 삼일절 기획 기사 미션을 받자마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당시 매체를 상대로 배포한 보도자료에 연락처가 있었다. 내선 번호가 바뀐 탓에 내가 누구고 왜 인터뷰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했다. 양 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학예연구사는 의외로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자신도 학보사 시절 이런 열정이 있었다며 두 손을 들어 파이팅을 외쳤다. 한 치 앞은 모른다. 그 말을 되새기며 또 다른 취재를 진행했다. 미리 준비한 설문지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내 관람객에게 돌렸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체험형 전시가 관람객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에 대한 설문에 진지하게 응했다. 이를 토대로 체험형 역사 전시에 관한 기사를 썼다. 그 일이 매거진 에디터로서 첫밗이었다. 바가지를 들고 전투적으로 기획 기사를 진행했던 나는 잡지교육원에 합격하고 나서야 보다 수월한 배수구를 택한 사람들의 기사를 읽었다. 내가 얼마나 꾀 없이 아니, 융통성 없이 기획 기사를 진행했는지 그때 깨달았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들이 하나 둘 매거진을 떠났다. 한국잡지교육원 동기 역시 매년 다른 길로 돌아섰노라 고백했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 사람들은 황소와 전철과 배수구 편에 서 있었다. 디지털에 밀려 종이 매체가 비주류 취급을 받는 시대였고, 종이 매체는 벼랑 끝에 몰렸다. 나 역시 매거진 에디터 일을 얼마나 더 직업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종종 그들과 같은 편에 서서 잘 닦인 길을 이용하고 싶어졌다. 물론 매달 매거진이 나오면 성취감에 도취돼 다시 바가지를 집어 들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이 일이 좋고, 이 일에 심취한 내가 좋았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할 만한 사람을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해내는 것. 판을 벌리고 그 안에 콘텐츠를 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에디터의 시간 안에는 늘 내가 좋아하는 글과 사진과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내가 몸 담았던 카메라 매거진은 전문지라는 특수성을 등에 업고 수명을 연장했다. 다른 분야 유명 매거진이 하나 둘 휴간 혹은 폐간의 길을 걷는 걸 보면서 편집부는 지금 당연한 것이 내일도 당연할리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 주니어 에디터였던 나는 소셜 미디어, 포털사이트의 플랫폼에서 자사 채널을 운영하며 지면 콘텐츠를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주목받는 콘텐츠를 실험했다. 막내면서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가 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주특기인 무모함에 사활을 걸어보자. 에디터란 본디 포맷에 구애받지 않고 상황이 어떻든 어떻게 해서라도 결과물을 만드는 직업이 아니던가.
한 장 한 장 모두 손익을 따져야 했던 지면에서 벗어나니 실험정신이 투철해졌다. 그렇게 바가지를 들고 여행, 촬영법, 유용한 정보를 퍼서 온라인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로 탈바꿈시켰다. 글의 호흡과 분량, 사진의 배치 등을 고민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건 매거진과 같았지만 디테일은 전혀 다르게 흘렀다. 후킹한 제목은 이목을 끌었고 지루한 도입부는 완독률에 영향을 미쳤다. ‘~하는 몇 가지 방법’ 같은 제목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법칙이 클릭률을 보장하던 때에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사진과 관련된 촬영법, 유용한 정보는 우리 매거진의 글이 독식했다. 우리의 주 무기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구나 새삼 깨달았다. 대신 장황하지 않게 필요한 정보만을 전해야 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에디터가 큐레이션한 사진과 카메라 콘텐츠. 매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방향이었다.
그 사이 마지막 선배가 떠났고 수석 에디터가 되었다. 카메라 브랜드가 국내 사업을 철수하고 연이어 팬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사진, 카메라 시장이 얼어붙었다. 매거진을 접지 않으려면 다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야 했다. 종이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매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종이 매거진이 발행되었는지 묻고 구매하는 나이 지긋한 독자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논산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매거진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한 번은 매거진 홍보차 나간 오프라인 행사에서 구독자 한 분을 만났다. 창간호부터 최신 호까지 빠짐없이 모아 온 종이 매거진 사진을 보여주며 오래 만들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We read magazines. 다양한 매거진의 최신 호를 읽고, 토론하고, 공유하는 오프라인 공간 종이잡지클럽의 슬로건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보며 종이 매체의 존폐를 논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매거진을 읽는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결과가 어떠할지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매달 최선을 다해 크고 작은 도전을 이어간다. 그거면 충분하다. 한 치 앞은 모르는 거라던 <무모한 도전> 멤버들도 결과가 어떠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매주 최선을 다해 도전을 이어가지 않았던가.
그래, 종이라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자. 우리의 강점은 전문성과 큐레이션 콘텐츠였고, 몇 년간 매거진을 발행하며 시의성에 상관없는 양질의 콘텐츠가 아카이빙돼 있었다. 동시에 매달 양질의 콘텐츠가 쌓여갔다. 이를 토대로 매거진에 북인북 형태로 브랜드 소책자를 제작해 삽입했다. 브랜드의 철학이나 신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책자였지만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으로 기획했고, 필요하면 브랜드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거나 과월 호 콘텐츠를 발전시켜 사용했다. 또 하나의 솔루션은 기술서 출간이었다. 이 역시 브랜드에 제안을 넣어 제작했지만 내용은 그 브랜드를 사용하는 우리의 구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로 채웠다. 둘 모두 매거진의 호흡과 달랐다. 덕분에 매번 바가지를 들어야 했지만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와 네 번째가 더 넓은 숲을 보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권의 소책자와 단행본을 발행하고 나니 전문성과 큐레이션 콘텐츠는 업계에서 우리만의 강점으로 자리 잡았다.
무모한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편집장이 된 후로 지면보다 온라인 플랫폼에 더 익숙한 에디터가 하나 둘 입사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온라인에 종이와 시너지를 낼 콘텐츠를 펼쳐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온라인 콘텐츠팀에서는 포털사이트의 플랫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포털사이트의 플랫폼을 빌려 콘텐츠를 잘 쌓아놓았지만 포털사이트가 새롭게 미는 플랫폼을 개발하면 우리의 콘텐츠는 언제나 뒷전이 되었다. 우리의 콘텐츠를 더 많이 보게 하려면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해야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 나르더라도 결국 우리의 것이 남았으면 했다. 퇴사 전 마지막 프로젝트로 사진, 카메라 신 최초로 홈페이지형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론칭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했던 모든 무모한 도전이 에디터의 일이었다. 에디터는 점 형태로 부유하는 것을 선택해 선으로 연결 짓는다. 그게 에디터의 관점이자 기획력이다. 그리고 이를 유형의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자원을 활용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킨다. 그 과정에서 도전과 헤맴은 필수불가결하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에디터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모함이 아닐까. 어차피 한 치 앞은 모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