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low Moments

자정비행 子正飛行

안녕, 사이판 #휴양여행

by 김진빈



우리는 겨울밤을 달려 사이판으로 향했다. 인천 공항의 불빛이 사라질 때쯤 작고 반짝이는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내 마음대로 그들이 별이라 믿었다. 구름 위 하늘은 유난히 검게 물들어 있었고, 하늘엔 유리알 같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별들은 우리가 가는 길을 고스란히 따랐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의 길을 고스란히 따랐다. 이쪽 별이 저쪽 별에게 신호를 보내는 가 싶더니, 자신의 차례가 된 저쪽 별이 어김없이 제 몸을 밝혀 항로를 만들었다.


한참 그들의 수호를 지켜보다가 일부러 창에 기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전날까지 야근을 하고 아침 늦잠을 잤다. 짐을 아무리 싸도 여행 준비를 끝나지 않고, 겨우 도착한 공항에선 여권이 없어 혼비백산이다. 마음은 급하고, 발걸음은 느리다. 잡으려는 것들이 잡히지 않고, 마음 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행이라는 상황만 바뀌었을 뿐 매일 아침 반복되는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소 같았으면 알람이 울리고도 한참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둥지둥 거리다 출근 준비를 시작했겠지.


그날은 조금 달랐다. 꿈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별들은 여전히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비행기를 지키고 있었다. 걱정 말라는 듯 그 자리 그대로에서.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와 착륙 준비를 시작했다. 별들이 사라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계속됐다. 아래로 하강하는 느낌만이 여기가 사이판의 어느 상공임을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신호였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드디어 사이판 땅을 밟았다. 미리 발급해둔 ESTA 비자로 별다른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우리가 탔던 티웨이항공은 야간 비행을 하는 사이판행 항공기 중 가장 일찍 사이판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마칠 때까지 다른 항공 사람들을 보지 못한 걸 보니 아마 그 차이가 꽤 나나보다. 덕분에 사이판 공항에서만 두 시간 이상을 보낼 수도 있다는 엄포가 정말 엄포로 끝이 났다.


겨울을 달려 여름으로 오는 사이 우리는 외투를 벗고 여름을 맡았다. 완연한 여름 냄새. 습한 공기 덕에 아무렇게나 말려 올라간 곱슬 머리마저 반가웠다. 옷기는 여미기 바쁜 한국에서 날아온 덕분에.



오랜만에 여행을 시작했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질 만큼 일상에 치여 살았던 시간을 보상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일상에서 지켜온 삶의 오밀조밀한 규칙들이 깨지는 유일한 시간. 내일 당장 무얼 해야 하는지 걱정하며 스케줄표를 채워나가는 일 따위는 잠시 미뤄두도 좋은. 여행의 시작.


안녕, 반가워 사이판!

올 겨울을 잘 부탁해.




***티웨이 항공 인천 - 사이판


가는 편 : TW307(인천19:45-사이판01:00)

오는 편 : TW308(사이판02:00-인천06:05)


인천 공항에서 사이판 공항까지는 약 4시간 15분 정도 소요되며, 시차는 우리나라와 1시간 차이다.


티웨이 항공은 야간 비행을 하는 항공사 중 사이판 공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사이판 공항에는 일정 시간에 항공편이 모두 몰리기 때문에 항공사를 잘못 선택하면 공항에서 두 시간 이상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티웨이 항공편을 이용하고, ESTA 비자를 미리 받아간 덕분에 빠르게 공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Hafa Adai, Saipan

낯선 이들과 겨울을 달려 여름에 닿았습니다.
11월에 맡았던 완연한 여름 냄새와 뜨거운 공기,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
모든 게 낯설었지만 한편으론 셀렜던 사이판, 티니안 여행기를 선명한 색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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