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일본 대마도 가족 여행 #대마도 #히타카츠 #산책
바다는 해만 뜨면 반짝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방에 그런 바다를 가진 행복한 마을, 히타카츠. 세월을 말해주는 낡은 집들이 즐비한 바닷가 동네를 돌다 보니 오래된 가옥 사이로 새로 지은 새하얀 집들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산한 거리에 삐쭉, 혼자 튀어 오른 새하얀 집들이 어쩐지 이방인처럼 느껴지면서도 문득 다음에 히타카츠에 갔을 땐 이 마을도 많이 변해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변해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소박한 분위기는 그대로 이길. 그 소원을 주문처럼 외우며 사진을 찍었다.
대마도에서의 둘째 날이자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그렇게 히타카츠 동네를 천천히 거닐다가 예쁜 카페에 들어가 수다를 떠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제의 강행군으로 우리 모두 지친 탓이었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배 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각자 사고 싶은 기념품을 사러 가기로 했다. 엄마는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작은 기념품 여러 개를 사고 싶다고 했다.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엄마는 한참 고민했고, 몇 집을 더 돌아봐야겠다고 선언했다.
엄마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상점 주인에게 한국어로 물어보는 일을 계속 신경 쓰던 오빠가 결국 화를 냈다. 오빠는 조금 미숙해도 일본에 왔으면 일본어를 써줘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엄마는 한국말로 해도 통하는데 시간도 없는 마당에 한국어를 쓰면 좀 어떠냐는 입장이었다. 오빠는 엄마의 높아지는 언성에 화가 났고 엄마는 오빠의 침묵에 서운해했으며 중간에 낀 나는 당황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황당했다. 서로 날카로워질 정도로 어제 일정이 강행군이었던 걸까. 한국이었더라면 별일 아니었을 상황에 서로 말도 하지 않을 만큼 싸운 이 상황이 나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히타카츠항으로 돌아왔다. 오빠와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엄마는 이내 눈물을 보였다. 나는 조용히 엄마 등을 쓸어내렸다. 뭐 때문인지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오빠는 자리를 피해버렸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서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탓이라, 엄마에겐 그렇게 설명했다. 엄마는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서운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늙은 엄마를 여행 내내 고생시키더니 엄마가 그렇게 창피하냐고 악을 쓰며 울었다. 잘못된 휘게였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살아온 엄마에게 따듯하고 편안한 여행을 선물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 생각하니 괜히 억울했다.
얼마 후 오빠는 커피 세 잔을 사서 돌아왔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엄마에게 커피를 내미는 일로 사과를 대신했다. 엄마는 그제야 웃어 보이며 이젠 같이 해외에 나오지 말자, 농담을 건넸다. 장난하냐고, 나 혼자 열을 내며 엄마를 몰아세웠고 우리 셋은 거의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가족이 사소한 일에 감정이 상하고 소박한 사과에 마음이 풀리는 사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와 함께하는 자체가 휘게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언제쯤 온전한 휘게를 함께 할 수 있을까,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
하루 12시간 도보 여행자
공백 없이 흐르는 일상이 지칠 때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는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밤이 저물어갈 때까지 한 지역을 걷고 또 걸으며 남긴 기록.
하루 12시간 도보 여행자가 붙잡아둔 순간들이, 누군가의 일상 탈출에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