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low Moments

적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게

8월, 일본 교토 도보 사진 여행 #기온거리 #맛집 #力餅식당

by 김진빈
"그래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긴 힘들 것 같아요." 아무런 목적 없이 핀란드에 왔다는 마사코는 목적이 없어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 고백한다.
내내 적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게 핀란드 헬싱키를 탐닉했던 마사코처럼 나도 기온 거리를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을 열지 않는 가게가 많았다. 기온 거리 사진이 대부분 야경 사진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아직 밤을 보내고 있는 가게와 텅 빈 거리가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그 길 끝에 가모가와 강과 이어지는 물길이 나왔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있는 테라스를 보고 카페에 앉아 오후 햇살을 즐기던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그제야 밥때를 놓친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었다.
작고 허름한 力餅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숲으로 향했던 마사코처럼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마사코처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니.
가게 안은 마치 80-90년 대 아니, 그보다 전 시대를 그린 영화에 등장할 법한 풍경이었다.
녹차가 든 잔을 손에 쥐고 일본어로 된 메뉴판을 한참 들어다 봤다. 한자로 된 메뉴판이라니.
한참을 구글과 씨름하다가 겨우 새우 돈부리를 주문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주인아주머니는 알까.
새우 돈부리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새우 돈부리라는 한자만 겨우 찾아서 이 메뉴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가끔 이날을 떠올릴 때면 포켓 와이파이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음식을 먹게 됐을까, 생각하며 웃곤 한다.
무튼 실패 없이 현지 식당에서 밥 먹기 완료. 너무 맛있었다. 고치소사마데시타!(ごちそうさまでした)!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여겨졌어요. 그래서 여길 오게 된 거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에서 마사코가 핀란드에 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 뒤에 바로 이 대사가 따라붙는다.


"그래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긴 힘들 것 같아요."


마사코는 내내 적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게 핀란드 헬싱키를 탐닉한다. 숲이 유명하다는 핀란드 청년 토미가 한 말 한마디에 숲을 찾아 거닐고, 사토미와 하이리 그리고 리이사와 함께 카페에 앉아 따스한 오후 햇살을 즐기기도 한다. 나 역시 아무런 목적 없이 찾아온 교토를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적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게. 뚜렷한 목적 없이 이곳을 찾았다 해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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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카 신사에서 시작해 대부분 비슷한 기념품을 파는 샵이 즐비한 거리를 걸어 가모가와 강에 닿았다. 생각보다 짧은 거리에 놀라 다시 한 블럭을 거슬러 올라갔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을 열지 않는 가게가 많았다. 기온 거리 사진이 대부분 야경 사진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분명 낮인데 어둠이 내려앉은 듯한 거리를 따라 걸었다. 아직 밤을 보내고 있는 가게와 텅 빈 거리가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그 길 끝에 가모가와 강과 이어지는 물길이 나왔다. 난데없이 등장한 휴식 공간에선 빛이 느껴졌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간간히 놓인 벤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있는 테라스를 보고 카페에 앉아 오후 햇살을 즐기던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그제야 밥때를 놓친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었다.


간판이 없어 무슨 가게인지 알 수 없는 곳과 카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에 작고 허름한 力餅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숲으로 향했던 마사코처럼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마사코처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니.


가게 안은 마치 80-90년 대 아니, 그보다 전 시대를 그린 영화에 등장할 법한 풍경이었다. 녹차가 든 잔을 손에 쥐고 일본어로 된 메뉴판을 한참 들어다 봤다. 한자로 된 메뉴판이라니. 한참을 구글과 씨름하다가 겨우 새우 돈부리를 주문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주인아주머니는 알까. 새우 돈부리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새우 돈부리라는 한자만 겨우 찾아서 이 메뉴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가끔 이날을 떠올릴 때면 포켓 와이파이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음식을 먹게 됐을까, 생각하며 웃곤 한다.




力餅식당


<마더 워터 マザ-ウォ-タ-> ‘세츠코’는 단일 메뉴에도 당당하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믿음직스럽다. 시죠 거리에서 가모가와 강 바로 직전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탈리아 레스토랑 반대편에 있는 力餅식당. 라멘과 돈부리 종류만 파는 단출한 메뉴를 가진 식당이다. 허름한 외관에 심플한 인테리어를 가진 비밀 아지트를 발견한 느낌. 왠지 게을러 보이는 오래된 외관에 반전 비밀이 있다. 1889년 만두 가게로 시작한 力餅식당은 8년 이상 노하우를 전수받아 개업한 체인점이 한신에만 100개에 이른다. 점포마다 판매하는 음식이 조금씩 달라 力餅식당 먹방 투어족이 있을 정도. 기온 거리 力餅식당도 100개 점포 중 하나다. 단, 전통 음식점답게 일본어 메뉴판만 있다. 주인도 웃고 손님도 웃는 웃픈 상황을 방지하려면 기본적인 메뉴 이름 숙지는 필수다.




하루 12시간 도보 여행자

공백 없이 흐르는 일상이 지칠 때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는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밤이 저물어갈 때까지 한 지역을 걷고 또 걸으며 남긴 기록.

하루 12시간 도보 여행자가 붙잡아둔 순간들이, 누군가의 일상 탈출에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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