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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Apr 08. 2019

호와 불호

음악 #호불호 #우원재 #기리보이




"이 가사 정말 공감되지 않아?"


내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앞을 향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가 같이 보내는 하루 중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 않은,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이따금 마주 보고 나누지 못한 대화들을 수줍게 내뱉는 시간. 오랜 운전으로 피곤이 무겁게 내려앉은 L군은 심드렁한 말투로 어떤 대목이? 하고 받아쳤다. 그리고는 너도 우원재가 좋다고?라는 위트를 덧붙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우원재가, 도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하잖아. 그렇다고 딱히 내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고."


L군은 눈을 비볐다. 내가 하는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침묵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호와 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호가 확실하다.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가수의 음악들을 들으며 매일 아침을 시작해왔다. 인생 영화와 인생 책을 물으면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이키와 커버낫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고, 애플과 관계된 모든 브랜드를 애정 하는 앱등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에 속한 무언가에 대해서는 일상적 덕후라고 할 만큼 잘 알고 또 자신이 왜 그것에 호라는 딱지를 붙였는지 명쾌하게 답을 이어간다. 반대로 불호에 가까운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화의 바통을 손에 쥐고 있던 나는 그런 그에게 호와 불호를 나누는 기준이 뭘까, 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L군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이라는 명쾌한 답을 냈다. 나는 리플레이 버튼을 눌러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재생시켰다. 그리고는 한참만에 운을 뗐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요즘은 사람들이 내 취향에 관심을 갖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

"왜?"

"내가 나를 잘 모르거든."

"쉽게 생각해봐. 너는 애플을 좋아하잖아.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애플 꺼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이패드도 샀잖아."

"내가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건 다 오빠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나한테 애플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라고 하면 나는 오빠가 좋아해서,라고 답할걸."


L군은 자세를 고쳐 앉더니 안경을 매만졌다. 그냥 스쳐가는 대화가 아님을 직감한 듯 단단히 바통을 이어받은 준비를 했다. 나는 요즘 취향을 묻는 사람들이 싫다, 라는 생각을 부쩍 자주 했다. 우유부단하고 즉흥적인 나는 남들의 호를 내 호로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많다. 또 내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일련의 일상적 행위들은 굉장히 불규칙적이다. 그 당시 극장에서 예매율과 평이 좋은 영화를 즐겨 보고, 서점 매대나 어디선가 유명하다고 하는 책들을 사서 읽는다. 눈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가 새로운 곳을 관찰하는 일은 즐겨하지만 그곳의 커피 맛과 내가 선호하는 커피 맛을 특별히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작가 책을 감명 깊게 읽었으며, 그 집 커피 맛이 어땠냐는 디테일한 질문이 불편하다. 이 말들을 미처 하기 전에 L군이 바통을 뺏어 들고 질문 세례를 쏟아부었다.


"너는 책을 좋아하니까 쉬운 것부터 찾아보자. 인생 책이 뭐야?"

"......."

"그럼 다시 물어볼게. 너는 어떤 책이 좋아?

"소설책이나 에세이."

"그럼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야?"

"공지영이랑 신경숙이지."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뭐야?"

"그게 문제인 것 같아."

"뭐가?"

"나는 오빠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지 묻는 대목부터 벌써 마음이 불편했어. 그다음 질문이 눈에 보이는 데 나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 사람들은 답을 원하는 데 나한테는 답이 없어." 


L군은 오래도록 바통을 이어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또 한  리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한참만에 입을 연 그는 자신이 아는 나에 대해 하나씩 읊어가는 일로 답을 대신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감정이 담긴 것들을 좋아해."

"맞아."

"글을 읽을 때도 쓸 때도 사람 감정이 담긴 것들에 반응하고, 길을 가다가도 감정이 동요하는 일이 있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해. 노래를 들을 때도 주로 마음이 가는 가사를 듣고."

"그렇지."

"답이 명확한 하나를 가리키지 않을 뿐이야. 그런 것 같지 않아? 사실 정확하게는 나도 모르겠네. 다 좋은 기리보이가 아니라서." 


그는 심각한 내게 또 한 번 위트를 날렸다. 자신의 답변이 제법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나도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명확하지 않지만 나는 희미하게나마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때 나는 호와 불호 사이에 어떤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호와 불호를 나눌 때 0과 100만을 기준으로 삼을까. 40과 50은 정말 불호이고 호일까. 사실은 불호의 탈을 쓴 호가 아닐까. 반대로 호의 탈을 쓴 불호가 아닐까. 호-10, 불호+20 같은 단어를 머릿속으로 그리다 혼자 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까지 하는 내가 불호+30 정도로 불호여서.





2019년 4월 8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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