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바다가 들려주는 엄마의 목소리, 울런공(Wollongong) 여행

by 김진빈





Photograph by Nomadgangz



2014년 1월 호주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의 일기엔 이런 글이 있다.

‘한국에서 진짜 내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2015년 1월 한국 땅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던 취준생의 SNS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여전히 끝이 없는 길을 걷고만 있다’


2016년 3월 인턴생활을 끝내고 정직원이 된지 6개월 차에 접어든 고민 많은 회사원은 지금 이 순간을 그토록 바라던 2년 전의 내가, 아직도 정확한 길을 찾지 못해 수많은 시행착오의 늪에서 허덕이던 1년 전의 자신이 오히려 부러워졌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Photograph by jimbeeny




삶의 무게에 무너져버린 일상


“우리가 행복하자고 돈을 버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


얼마 전, SNS에서 만화가 윤태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미생의 한 장면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무너져버린 일상’에 대한 얘기로 화두가 이어졌다. 피할 수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 어쩌다 쉴 수 있는 날이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쉬는 날을 통째로 날리기 일쑤인 근로자의 삶. 가장 일상적인 것이 무너져 버린 삶을 사는 현대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숨통 좀 트기 위해 종일 목을 옥좨 온 넥타이를 풀고 주말에 훌쩍 떠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여행은 내내 바쁘고, 내내 걱정이 앞서며, 피곤함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위로받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조차 불안에 휩싸여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들.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진정한 여행, 진정한 휴식이 가능하긴 할까?



Photograph by Nomadgangz




호주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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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의 어느 날.

하늘을 본지가 언젠지.

호주 삶에 권태기가 왔다. 시드니에 정착한지 불과 4개월. 아직까지 6개월 이상 호주에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 하루 5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나는 2개월 만에 하루 9시간을 일하는 풀타임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지역을 옮길 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 일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 몸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일 왕복 3시간을 걷던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고 나서부터는 아침에만 걸었다. 그마저도 한 달 정도 지나자 몸이 버티지 못하겠는지 병치레가 잦아졌다.


영어도 더 이상 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매니저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정말 좋았겠다. 매사에 열심히 한다고 날 좋아해주고 응원해줬던 매니저도 늘어가는 컴플레인에 점점 지쳐가는 듯했다. 내가 호주에 온 이유는 뭘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목표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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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을 시작하며.

날씨는 맑은데 기분은 흐림.

호주 사람들이 기나긴 휴가에 들어가고(호주는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짧게는 2주, 길게는 한두 달 휴가를 떠난다) 가게가 많이 한산해졌다.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줄었다. 기나긴 휴가가 시작됐다. 그리고 여유를 즐긴지 이틀 만에 가게에 불려 갔다. 오랜만에 찾은 공원 벤치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매니저도 아니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손님이 많아졌으니 와달라는 용건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디 있는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그냥 올 사람임을 단정 짓고 있었다. 좋은 날씨에 기분을 망쳤다.


가게에 도착해 왜 이렇게 늦었냐는 핀잔을 들었다. 가게는 한바탕 손님을 치른 모양새였다. 사장이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그제야 어디 다녀오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브레이크 타임을 핑계로 사라진 사람들을 대신해 홀을 정리했다. 오늘의 기분을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오분 대기조. 언어가 부족하니 뭐 하나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진짜 내 일을 하고 싶다.



Photograph by jimbeeny




잘할 수 있다는 확신,

어쩌면 잘해야 한다는 불안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윤태호의 말이 한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2년 전 호주에서 꿈꿨던 진짜 내 일이 뭘까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는 6개월 차 회사원. 아직은 신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많은 일거리에 비례해 사고도 많이 치는 사고뭉치. 덕분에 잠을 덜 자고 주말을 반납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꿈이라는 환상에 가려진 퍽퍽한 지금의 삶이 호주에서의 삶과 다른 게 뭘까.

꾸려나갈 내일이 없는데 내 일을 꿈꿔서 무얼 할까.


오랜만에 2년 전 일기장을 꺼내들자 기억은 2014년 1월의 호주로 옮겨갔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 하나로 택한 호주행. 사실 그 확신 뒤에는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는 불안이 쌍심지를 켜고 곁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만 나태해지려 하면 불안이 열심히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나섰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호주에 와서 주구장창 못 한다는 소리만 듣고 사니 이미 자존감은 바닥을 친지 오래였다. 그렇게 자연스레 할 수 있다를 외치는 예쓰 걸이 됐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내가 더 열심히 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생각했던 것 같다.


배터리는 금세 방전됐다. 지쳤다. 돈을 받지 못하고 추가 일을 하고, 오분 대기조처럼 부르면 나가야 하는 상황과 자주 마주했다. 상처 투성이가 된 예쓰 걸은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잘해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여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했고 내 권리를 내세우지 못하고 입을 닫아야 했으며,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해야 했다.


감정을 지우고 표정을 감춘 채 일하는 기계가 됐다. 하하호호 예쓰 걸의 삶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화산이 분출했다. 참고 참았던 감정이 이제 더 이상 자리가 없다며 가슴을 두드리는가 싶더니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그때부터 한바탕 울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습관이 생겼다. 혼자 속 시원히 비워내는 편이 편했으므로. 배터리 수명이 점점 줄어 이따금 찾아왔던 방전의 시간이 더 빠른 주기로 찾아왔다. 우는 날이 잦아졌고 그마저도 속 시원히 울 수 없게 됐다.

감정은 다른 돌출구를 필요로 했다.



Photograph by jimbeeny
20140411-IMG_6440.jpg Photograph by jimbeeny




여행이 건네 온 작은 토닥임


지칠 대로 지쳐버린 1월의 어느 주말. 나 홀로 울런공(Wollongong)행을 택했다. 울런공은 딱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당일치기로, 시티에서 가장 먼, 바다. 울런공역으로 가는 South Coast Line 열차를 타기 위해 센트럴역에 도착했을 때 전 열차가 바로 직전에 떠난 상태였다.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었고 졸지에 센트럴역 미아가 됐다. (타운홀역에서 열차를 타면 레드펀역에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환승 열차 시간까지 체크하는 번거로움 대신 타운홀역에서 10분 정도 걸어 센트럴역에서 타는 걸 추천한다) 예전 같았으면 여행 시작부터 망쳤다며 투덜거렸겠지만 그날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고 싶었다.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시티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열차가 오는 플랫폼에서 텀블러에 타 온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자 이내 열차가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던 할아버지도,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까르르 웃던 아이도, 청춘의 열기가 느껴지는 내 또래 무리도 모두 같은 칸에 몸을 실었다.


South Coast Line

South Coast Line이라는 이름답게 중간중간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시티에서 볼 수 없던 작은 단독주택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른한 시간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혹은 달콤한 잠으로 채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오늘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진짜 휴식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에 넣어온 몇 개의 인디밴드 음악이 반복해서 플레이되는 동안 울런공역에 다다랐다. 1시간 50분이 좀 안 되는 시간을 달리는 동안 몸도 마음도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냈다. 낮은 지붕에 페인트가 벗겨진 간이역 같은 작은 울런공역을 나서자 낮은 주택이 즐비한 동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중충한 기분을 알아챘는지 하늘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듯 굴었다. 바다가 있는 Foreshore Park까지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비가 올 것 같아 무료 셔틀버스인 55번 버스에 올랐다. (울릉공역 근처에서 Foreshore Park 쪽으로 가려면 55A가 빠르다. 반대로 Foreshore Park에서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55C가 빠르다)




*시드니 트레인 정보

센트럴(Central) - 울런공(Wollongong)


편도(왕복) 8.8(17.6) 호주달러

소요시간 편도 약 1시간 40~50분

탑승위치 플랫폼 14 or 25(시간대 별로 다름)

전화번호 시티레일 131 500

홈페이지 http://www.sydneytrains.info





20140411-IMG_6435.jpg Photograph by jimbeeny



거센 바람이 불었던 것과 달리 울런공 바다의 첫인상은 아직까지 잔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거친 파도 사이로 괜찮다는 토닥임의 손길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던 곳. 파도소리가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포근해 하늘의 으름장만 아니었어도 잔디에 누워 잠들기 충분할 정도였다.


울런공은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 언어로 '바다의 소리' 혹은 '파도의 소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관광객 인증샷 성지인 하얀 등대를 중심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등대 주위 잔디에 앉아 울런공 파도의 잔잔한 일렁임이 주는 작은 위로를 건네받는 이들도 많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풍 같은 비가 몰려올 거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그 아래로 수많은 사람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화가 난 하늘은 소낙비를 뿌려댔지만 오히려 잘됐다며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이 하나 둘 늘었다. 소낙비가 그치고 잔디에 앉아 한참 동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 덜컥 겁이 났다. 나만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까.



20140411-IMG_6439.jpg Photograph by jimbeeny



그렇게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호주에 온 게 잘 한 일일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길일까. 그리고 잔딧물이 흰 바지를 연둣빛으로 물들여갈 때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았을 때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벌칙으로 했던 프리허그 팻말이 시야를 가렸다. 고개를 들자 동양인 여자 애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 나보다 체구가 작은 그 아이를 아무 말 없이 안았다. 엄마 품처럼 따듯했다. 분명 안은 쪽은 내쪽이었는데 위로를 받은 것도 내쪽이었다.


"Have a nice day!"


짧은 인사와 함께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린 아이. 엄마의 품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시 잔디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로 매일 같이 하는 평범한 대화가 오갔다.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일은 힘들지 않니. 잠자리는 괜찮니.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탈이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한 토크쇼에서 김제동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면 당신이 가진 고민이 상대방 것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엄마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 이 모든 짐이 엄마의 것이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달콤한 엄마의 자장가 같은 파도 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괜찮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나는 너를 믿어. 그렇게 몇 번의 파도에 몇 번의 위로를 더 건네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리에 불안이 가져다준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울런공역으로 향했다.



20140411-IMG_6514.jpg Photograph by jimbeeny




괜찮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울런공에서 시티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이런 글을 썼다. 가끔은 훌훌 털어버릴 쉼표가 필요하다. 울런공에 다녀온 뒤 호주에서도, 한국에서 돌아와서도 이따금 길을 잃을 때마다 바다의 위로를 떠올렸다. 그리고 항상 쉼표를 찍을 바다 여행으로 이어졌다. 늘 더 이상 내가 가는 길을 의심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해도 어딘가에는 끝이 있다고 믿으면서. 믿음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길을 잃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이제는 자꾸 넘어지게 만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알고 있다.


인턴생활을 끝내고 정직원이 된지 6개월 차에 접어든 고민 많은 회사원은 오늘도 울런공으로 가던 그 날의 공기를, 그 잔잔했던 풍경을, 그리고 울런공 바다가 건넸던 위로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여전히 의심하고, 의심이 들 때마다 바다를 찾는다. 그리고 매번 깨닫는다. 무너진 일상이라도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어딘가엔 길이 있고 그 길은 반드시 끝이 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시 최면을 건다.


사실 윤태호가 말했던 무너진 일상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참고 인내하고 있는 시간이며, 멀게만 느껴지는 목적지로 가는 길에선 누군가가 건네는 작은 위로가 필요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두려움에 지친 마음이 요동칠 때 누군가 손을 내밀며 건네 올 작은 위로를.


괜찮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나는 너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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