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low Moments

시간을 걷는 여행

10월, 일본 대마도 가족 여행 #대마도 #히타카츠 #산책 #01

by 김진빈

*대마도 히타카츠 동네 산책 맵은 가장 하단에 있습니다.




전날 종일 걷느라 피곤했던 우리는 오후 배를 타기 전까지 히타카츠 항 근처 작은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친절한 카미소 호텔 직원이 히타카츠 국제터미널까지 우릴 배웅해줬고, 우리는 가장 먼저 물품보관함에 짐을 맡겼다.


한국과 배로 한 시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일까. 이 동네는 어쩐지 낯이 익었다. 이 동네는 버스가 다니는 큰길을 따라 위쪽 동네와 아래쪽 동네로 나뉘는데, 아기자기한 가게는 모두 하천이 흐르는 아래쪽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엄마와 느릿느릿 걷다 예쁜 곳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 일을 반복하는 사이 오빠는 이 작은 동네에서 모습을 감췄다.


엄마는 동네를 걸으며 옛날 우리 동네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우리는 20년이 넘도록 한 동네에 산다. 예전에는 큰 도로 뒤로 작은 하천이 흘렀고 그 주위로 2~3층짜리 건물을 즐비했다. 그 이상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일이 마을의 이슈가 될 정도였다. 옆집과 위아래 집을 물론이고 앞 동에 누가 사는지, 자식이 어느 고등학교를 가고 어디에 취직했는지 속속들이 다 공유하고 살았다. 최근 높은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낮은 집값에 비해 서울로 가는 교통이 좋다는 이유로 낯선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도 하나 둘 동네를 떠나고 내가 나이가 든 이유도 있겠지만, 이제는 앞 동은커녕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엄마는 히타카츠가 그때의 우리 동네를, 그리고 히타카츠 사람들이 그때의 우리를 닮았다고 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 뒤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그 길을 따라 1~2층짜리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간간히 길을 오고 가는 사람끼리 인사를 나누는 걸 보면 이 동네 사람들은 그때의 우리처럼 서로를 잘 아는 듯했다. 엄마는 아주 작은 소품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운영했던 잡화점을 닮아 있었다.


"이곳도 변할까?"

"글쎄. 시간이 흐르면?"


그 사이 저쪽 골목 끝에서 오빠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동네 진짜 작은가 보다. 결국 다시 만나네."

"아마 그래서 변하지 않을 거야."


엄마는 내 말에 배시시 웃어 보이더니 오빠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작은 초밥집에 들어갔다. 바와 테이블 자리가 나눠져 있었고, 바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바 끝 쪽에 앉아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을 보면서 엄마가 자주 나를 데려갔던 동네 치킨집을 떠올렸다. 고작 테이블 4~5개가 들어갈 정도로 작은 가게에는 손님이 많은 날보다 적은 날이 더 많았고, 우리는 늘 한편에 자리 잡고 치킨을 뜯었다. 치킨을 다 먹고도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를 기다려야 했던 나는 기다란 의자를 베고 누워 잠이 들곤 했다.


시간을 걷는 여행. 히타카츠 항을 산책하고 난 뒤 나는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이 한 문장을 적었다. 이제 우리 동네에는 엄마 친구가 운영하던 잡화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갔던 치킨집도 사라진 지 오래다. 큰길 뒤쪽으로 난 작은 하천은 오래전 아스팔트로 매워졌고, 어떤 음식점에 가더라도 아는 이를 만날 확률이 극히 드물다. 엄마는 종종 옛날 우리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좋아한다. 나 역시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우리를 떠올리며 추억을 곱씹을 이야기를 주고받곤 한다. 그 이야기는 늘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막을 내린다.


문득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런 그리움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시대는 어쩔 수 없겠지만 외적인 모습이 변하더라도 여전히 지금처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서로의 집을 들여다보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처럼 과거에 머물며 그리움을 벗 삼지 않고, 현재에 머물며 서로가 서로를 벗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2.jpg 히타카츠 국제터미널부터 동네의 끝 지점이라고 봐도 좋은 히타카츠 터미널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고작 30-40분 남짓.
1.jpg 엄마와 내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동네를 산책하다 예쁜 곳을 만나면 서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이,
3.jpg 오빠는 이 작은 동네에서 자취를 감췄다. 찾는 일을 포기하고 낡은 집들 사이로 난 골목을 따라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7.jpg 걷다 보니 동네가 참 낯설지 않았다. 한국과 너무 가까워서 일까, 구석구석 묘하게 닮았다.
4.jpg 엄마는 옛날 우리 동네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그리고 히타카츠 사람들이 그때의 우리를 닮았다고 했다.
IMG_8822.jpg 버스가 다니는 큰길 뒤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5.jpg 그 길을 따라 1~2층짜리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6.jpg 간간히 길을 오고 가는 사람끼리 인사를 나누는 걸 보면 이 동네 사람들은 그때의 우리처럼 서로를 잘 아는 듯했다.
10.jpg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외적인 모습이 변하더라도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처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서로의 집을 들여다보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IMG_8857.jpg 우리처럼 과거에 머물며 그리움을 벗 삼지 않고, 현재에 머물며 서로가 서로를 벗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IMG_8840.jpg 한참을 걷다 저 멀리 아픈 두 발 덕에 정신줄 놓은 오빠를 다시 발견! 그나저나 이 동네, 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작다!




대마도 히타카츠 동네 산책 맵

출처 : 쓰시마 부산사무소(http://www.tsushima-busan.or.kr)

히타카츠 국제터미널부터 시작하는 이 작은 동네는 끝 지점이라고 봐도 좋은 히타카츠 버스 터미널까지 거리가 1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느린 걸음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걸어도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도에 표시해놓은 빨간 길이 버스가 다니는 큰길로, 그 위쪽 동네에는 주로 사람들이 사는 주택 단지가 있다. 반대편 아래쪽에는 작은 마을에 있어야 할 병원, 약국, 슈퍼, 빵집, 음식점, 카페 같은 가게들과 아기자기한 모습이 눈에 띄는 몇몇 가게가 있다. 큰길 뒤쪽으로 난 물길은 히타카츠 바다에서 이어지는 곳으로 이 길 양 옆 공터에 내가 애정 하는 길고양이가 정말 많다!!!!





하루 12시간 도보 여행자

공백 없이 흐르는 일상이 지칠 때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는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밤이 저물어갈 때까지 한 지역을 걷고 또 걸으며 남긴 기록.

하루 12시간 도보 여행자가 붙잡아둔 순간들이, 누군가의 일상 탈출에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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