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빈 May 17. 2019

대화는 사유를 부른다

#브런치무비패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영화 <논-픽션> 리뷰

*이 글은 올리비에 아사야스 영화 <논-픽션>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던 첫 잡지사를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잡지사에서 일을 막 시작할 때였다. 처음으로 주어진 업무는 매거진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대게 지면에 게재된 기사를 소위 '온라인에서 읽힐 법한 글'로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브런치에 장문의 여행 에세이를 올리는 일이 온라인 활동의 전부였던 나는 밤낮으로 새로운 채널들을 공부했다.


고백하자면, 온라인 에디터로 일하는 몇 개월 동안 나는 온라인상에서 콘텐츠가 소비되는 방식에 조금 진절머리가 났다. 최소화된 글자 수 안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이미지로 시선을 끌다 보면 우리가 매거진에 담고자 했던 정보는 산산이 흩어지고 인과 관계없이 결과만 남기 일쑤였다. 심지어 그 마저도 사라진, 그저 시선을 끌기 위한 광고성 글만 작성할 때도 많았다.


죄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온라인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따끔하게 비판하겠으나, 의외로 반응이 좋을 때도 많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시선을 끌만한 카드 뉴스를 통해 사람들이 홈페이지와 온라인 채널로 유입됐고, 자연스레 정기구독자와 서점 판매량이 늘었다. 지면에만 매진했을 때는 얻지 못했던 결과를 온라인이 가져왔다. 개중에는 전화와 이메일, 온라인 채널을 통해 e-Book 발행 계획을 묻는 독자도 많았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영화 <논-픽션> 공식 이미지.


그때 나는 선입견을 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어떤 과도기에 있는 사안, 혹은 어느 쪽도 명확한 정답이라 여길 수 없는 일과 마주했을 때마다 나는 대게 내 안에서 답을 찾았다. 누구라도 상반된 두 관념이 충돌할 때는 스스로가 믿는 바를 사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지면과 온라인 사건을 몸소 체험한 이후 선입견을 뚫고 나갈 돌파구로 대화를 택했다. 대화는 사유를 부르고 사유는 지금보다 다방면으로 삶을 생각하게 한다.


대화에 재미를 붙였을 무렵 나는 온라인 콘텐츠는 지나치게 가볍다, 라는 말로 대립 구도를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좋아했다.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마치 저 너머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처럼 굴기도 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지면 콘텐츠는 지나치게 무게를 잡는다, 라는 말로 항상 나와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요즘의 나는 온라인 콘텐츠와 지면 콘텐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화두로 던질 때가 많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결론을 내린 답이 모두에게 통하는 답이 아니고, 내 답도 물처럼 흐르는 사유를 따라 그때그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영화 <논-픽션>을 보면서 그동안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나와 상대방은 늘 어느 입장에 서 있었고, 방향이 같은 적도 다른 적도 많았다. 어느 날은 내가 화두를 던지고도 물처럼 흐르는 대화에 이끌려 상대편에 서게 되는 일로 결론이 난 적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그 반대인 날도 있었다. 전자책에 확신이 없다던 알랭(기욤 까네)과 종이책 시대를 끝났다던 로르(크리스타 테렛)처럼 나는 수많은 대화 안에서 지금을 사유하며 나만의 정답을 찾아 나섰다. 결국 종이책을 만들지만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알랭의 마지막 모습처럼, 나 역시 여전히 매거진을 만들지만 여러 채널을 열어두고 생각하고 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영화 <논-픽션> 공식 포스터.


<논-픽션>의 원제는 Doubles Vies 즉, 이중생활을 의미한다고 한다. 알랭과 로르, 레오나르(빈센트 맥케인)와 셀레나(줄리엣 비노쉬)의 관계처럼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바람을 피는 이중생활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런 장치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전자책을 비판하면서 팔리는 것들에만 몰두하는 편집자 알랭의 이중적인 모습이나, 모든 픽션은 자전적이라며 소설에 절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셀레나와의 이야기를 쓴 레오나르드의 모습. 자신이 믿었던 정치인의 성적 이중생활에는 마치 자신의 신념이 무너진 것처럼 혼란스러워하는 발레리(로라 함자위)가 오히려 남편 레오나르의 이중생활에는 침착한 아이러니함까지.


이들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말하지만, 조금만 떨어져 감독이 숨겨 놓은 위트 있는 장치들을 찾아보면 대화를 통해 조금씩 변화되고 상대방에 녹아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영화라 조금 극적인 부분이 있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상황은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 즉, 논-픽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피고 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