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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May 31. 2019

다름을 인정할 용기

#브런치무비패스 줄리안 미첼 원작 연극 <어나더 컨트리 > 리뷰

*이 글은 줄리엔 미첼 원작 연극 <어나더 컨트리 Another Country>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점과 점이 아닌, 선과 선 혹은 도형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연결 지으려고 한다. 개인을 개인 자체로 바라보기보다 사회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집단으로 이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홀로 떨어진 어느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어느 곳에 소속돼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동그라미에 속해 있다면 다른 동그라미들과 기꺼이 손을 맞잡기도 하며, 나와 다른 네모를 경계하기 위해서 종종 명확하게 선을 긋기도 한다.


만약 내가 아무도 속해 있지 않은, 혹은 소수가 속해 있는 네모라는 집단에 맞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아마 다수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 네모인 척 하기 바쁠 것이다. 사회는 내게 그래야 한다고, 다름은 곧 틀린 일이라고 가르쳤고 나는 이미 다수가 공감하는 선택을 하는 내가 익숙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내 왔다.


넌 정말 동그라미가 맞아?

이대로 괜찮아?


연극 <어나더 컨트리> 공식 포스터

<어나더 컨트리 Another Country> 두 주인공 가이 베넷(연준석)과 토미 저드(문유강)는 다수로 칭해지는 동그라미들과 어딘가 다른 세상 즉, 네모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1930년대 영국 사립학교라는 이 연극의 설정상 계급이 명확하고 규율은 엄격하다. 또한 권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세상 즉, 학교의 규율에 반하는 다름은 곧 틀림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이 베넷은 성소수자다. 그는 학교 안에서, 나아가 한 국가 안에서 자신이 더 높은 권위를 갖기 원하기 때문에 자신이 네모임을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학교 내 많은 동그라미를 향해서는 암암리에(?) 자신이 네모임을 끊임없이 노출한다. 이처럼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권위에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성소수자와 같은 개개인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다.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토미 저드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드러낸다. 이미 학교 내에서도 그가 명확한 신념을 가진 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걷는 방향을 의심하지 않는 확신이 있는 사상가다. 때문에 학교가 정해놓은 규율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가이 베넷은 자신과 달리 남학교 안에서 심심풀이로 동성애를 대하는 몇몇 이들을 꼬집으며, 토미 저드에게 '선택의 문제'에 대해 말한다. 토미 저드가 가진 명확한 신념은 호기심에 혹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동성과 이성 간의 사랑 중 선택적으로 택할 수 있는 이들처럼 어떤 선택의 문제지만, 가이 베넷에게 사랑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는 동그라미라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가이 베넷은 토미 저드와의 대화를 통해 개인의 이상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학교나 국가가 그 이상이나 신념과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면 NO를 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토미 저드가 공산주의를 지상의 천국이 아닌 지상의 지상이라고 칭했듯, 개인이 온전히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수많은 동그라미 앞에서 내가 그냥 네모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한 신념과 확신뿐이다.



이 연극은 수많은 대사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내용 자체도 무거운 편이다. 위트 있는 몇몇 장면이 등장하지만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없다면 연극 내용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사실 극초 중반까지의 가이 베넷처럼 내가 이 연극을 잘 이해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연극을 보러 가기 전 콜린 퍼스가 등장하는 영화 <어나더 컨트리>를 보거나 극의 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가는 편이 이 연극을 배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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