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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민 Oct 02. 2019

왜 맥주잔에 레이저를 쐈나?

최고의 맥주 맛을 위한 전용잔에 숨겨진 과학

‘맥주의 왕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독일이라면, 아직은 좀 더 마셔야 ‘맥덕’ 소리 좀 들을 것 같다. 독일이 세계적인 맥주 강국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무려 500년 동안 ‘맥주 순수령’에 발목을 잡힌 독일은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생산할 수가 없었다. 

한 편 맥주를 양조하는데 재료에 있어서 제약이 없었던 벨기에는 800 가지 이상의 다양한 맥주를 생산해 내고 있으며, Trappist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수도사들이 직접 만드는, 세계적으로 14개(2019년 기준)의 수도원만이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의 인정을 받아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트라피스트 양조장 무려 6곳이나 벨기에에 있다.

 벨기에는 다양한 맥주 만큼이나 제품마다 고유의 맥주 전용잔을 보유하고 있다. 맥주 전용잔은 단순히 멋진 디자인만을 고려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맥주잔에는 숨겨진 과학이 있다. 맥주 브루어리 마다 자신들의 맥주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맥주잔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그 들만의 노하우와 자부심 그리고 과학이 숨겨져 있다. 맥주의 향을 모아 주기 위해 잔 입구가 좁아지는 잔, 맥주가 미지근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꺼운 유리에 손잡이 까지 달린 잔, 입구가 넓어서 향이 확 퍼지게 도와 주는 잔 등 저 마다 맥주의 특성을 살려 주기 위해 디자인이 고안된다. 



맥주의 스타일 별로 양조장에서 다양한 전용잔을 만드는데, 특이하게도 맥주잔 안쪽 바닥에 레이저를 이용하여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타공을 한 잔들이 있다. 맥주를 따르기 전에 잔의 안쪽 바닥을 자세히 보면 아주 미세한 원형 2 줄로 레이저 타공이 되어있다. 

이러한 타공은 laser etched mark 또는 nucleation point, 혹은 영국에서는 widget 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맥주잔 바닥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타공을 했을까?



맥주를 마실 때 맥주의 거품은 맥주의 맛을 유지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향이 강한 에일류의 맥주를 마실 때는 더욱 그렇다. 거품이 맥주의 아로마와 플레이버를 잡아주고, 맥주를 마실 때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며, 표면에 막을 형성하여 맥주의 산화를 막는 역할도 한다. 

맥주잔 바닥에 레이저로 타공을 하게 되면 맥주를 잔에 따른 후, 처음부터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포가 올라와서 거품을 유지하게 된다. 잠시 훅 올라왔다가 바로 수그러드는 거품이 아니라, 잔을 완전히 비울 때까지 계속 거품을 만들어 내며 맥주의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잔은 향과 맛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라거 종류의 맥주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탄산이 지속적으로 기화되어 맥주의 톡 쏘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잔을 쓰는 맥주는 그만큼 맥주의 맛과 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잘 유지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최상의 품질의 맥주를 만들고 그 맥주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노력하고 연구하는 외국의 양조장들이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맥주잔에도 숨겨진 과학(?)이 있다. 아니 경영학(?)이라고 해야 하나? 맥주 제조사가 다르고, 신제품이 나와도 업소용 맥주잔 모양은 변함이 없다. 맥주 1병으로 국산 맥주잔에 따르면 2잔 반이 나온다. 2병으로 따르면 5잔, 3병으로 따르면 7잔 반이 나오기 때문에 두 명이 공평하게 마실 수가 없다. 4병으로 따르면 10잔, 짝수로 떨어져서, 두 명이 맥주를 마셔도 최소 4병은 마셔야 사이 좋게 나눠 마실 수 있다. 

또한 소주와 맥주를 같은 회사에서 만드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경우를 감안할 때, 소맥을 한 번에마시기에 가장 적합한 사이즈의 맥주잔 용량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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