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혼자 칠보산을 뛰어올라간 이유

칭찬은 나를 산에 오르게 한다

by 오잘줌마

어느 순간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책 한권이라도 있었으면 하면서 저자가 되기를 십 년간 벼르고 살았다. 십 년동안 벼루를 갈았다면 돌 바늘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나는 어릴 적에 순둥했다고 한다. 19개월 차이로 여동생이 태어났고 엄마는 아가인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미야~ 동생이 태어났으니까 이제 엄마 젖은 아가 주자?"

"녜~" (지금 생각해보니 왠지 울먹였을 것 같다.)


다행인 건 그 날 이후로 아버지께서 나를 안고 잤다고 한다. 처음 며칠은 아버지 가슴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런 내가 안쓰러워서 아버지는 나를 예뻐하셨나보다. 아버지는 나를 예뻐하셨다.


혼자서 글을 썼다. 십 년 넘게 블로그에 썼고, 어느 모임에서 함께 글을 쓰기도 했다. 창조성의 여신이 나를 만나러 올 지 몰라서 가끔씩 모닝페이지 글쓰기를 하기도 했다. 내가 저자인 글 '자저전'을 쓰기도 했다. 어쩌다보니 세 권이나 비공식 책을 썼다.


어느 순간 주변에서 책쓰고 저자가 된 이들이 많아졌다. 처음엔 그들을 응원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가 알던 모르던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다. 책꽃이 한 칸이 넘어가면서 마음의 부담이 생겼다. 코로나로 일이 줄어들어 지갑이 얇아진 것도 책을 매번 구입하는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응원하고 싶거나 의리심이 생기는 지인 저자의 책을 구입한다. 어려운 때에도 마음껏 책 구입을 할 수 있을때 나는 행복하다.


내 책을 낸다는 건, 점점 부담스럽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 어쩌면 게으름에 대한 그럴싸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자가 되기 보다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글 쓰고 책 쓰고 강연하는' 삶을 꿈꾸었다. 그랬더니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작가의 글이 되려고 했다. 세 줄 일기 앱에 딱 세줄 글을 쓰고도 위안을 삼았다. 마음이 아주 상쾌하지는 않았다. 조바심과 평정심의 경계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 때가 있다'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자기 삶을 쓰는 글쓰기 모임에서 반가운 댓글을 봤다. 토요일 오후에 내 가슴이 요동쳤다. 나에게 글을 잘 쓰니 심각하게 작가되심을 권하는 섬세한 글을 쓰는 이였다.

새 신을 신지도 않았는데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수업 준비하던 노트북을 덮고 등산화 끈을 야무지게 묶었다. 생수병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혼자 산에 가는 건 무서웠었는데 남편과 같이 가는 등산과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이 날 이후 혼자서 칠보산에 오를 궁리를 짬만 나면 하고 있다. 꼼지락 거리면서 오십 명학생의 온라인 과제를 내려 받고 저장하고 살펴보고 피드백 하다보면 일주일이 금새 지나간다.


토요일 오후 산에 오르지않고는 베길 수 없을만큼 행복한 날이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해 칭찬해주니 멧돼지 만날까봐 무서웠던 산이 그렇게 따사로울 수가 없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작가가 되었다. 한 달이 지났어도 그 떨림은 줄어들 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열었는 지 모르는 브런치 빈 방에 드디어 글 하나를 남긴다. 작가의 첫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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