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이 작다. 손가락을 쫙 펴고 엄지손가락 끝에서 새끼손가락 끝까지의 길이가 19cm다. 피아노 건반 화음을 누르지 못할 만큼 손이 작다. 30년 전 피아노 조율을 배울 때 단음 조율을 겨우 끝내고 화음 조율을 하다 포기할 정도로 손이 작다. 이후로는 살면서 크게 어려운 점이 없었는데 둥근 그라인더로 커피콩 가는 게 쉽지 않다. 커피콩을 갈 때면 식탁 의자에 앉아서 발을 의자 위로 올리고 두 발 사이에 그라인더를 끼고 커피콩을 갈았다. 두 발로 꽉 잡아도 커피콩을 가는 건 힘이 든다. 지루하고 힘이 들어서 다른 재미를 찾느라 커피콩 두 스푼을 넣고 몇 번을 돌리면 다 갈리는 지 세어 보기도 했다. 보통 이백 오십 번 넘게 돌려야 한다. 처음에 구입한 그라인더는 사각형 몸체라서 붙잡고 갈기는 쉬웠는데 뚜껑이 없어서 커피가 밖으로 튀어 나갔다. 2년 쯤 사용하다가 나사가 헐거워져서 뚜껑 있는 그라인더를 찾다가 둥근 그라인더를 구입했었다. 생긴 건 야무지게 생겼는데 한 손으로 잡고 분쇄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지난 2월에 자동 그라인더를 구입했다.
자동 커피 그라인더를 구입하니 전원을 꽂아야 했다. 주방 테이블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내리려고 할 때마다 식탁 옆 선반에 놓여있던 커피 기물들을 사용하기가 번거로웠다. 한동안은 선반에서 커피콩과 서버, 드리퍼, 필터를 챙겨서 식탁에 준비하고 주방 안쪽에서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이고 자동 그라인더에 커피를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 식탁을 돌아 드립 커피 준비물을 챙기고 다시 주방 안쪽에서 커피콩을 가는 동선이 어수선했다. 그래서 필터를 가스렌지 후드 옆 선반으로 옮겼다. 커피콩은 작은 봉투에 덜어서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두고 서버와 드리퍼도 옆에 놓아두었다. 하나씩 옮기다보니 이제는 주방 안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최적의 동선이 만들어졌다. 어느 날 문득, ‘자동 그라인더 하나 바꿨다고 커피 내리는 패턴이 완전 바뀌는데, 업무의 변화 또는 새 사람이 온다면 흐름을 잘 익혀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의 큰 변화에 느리지만 잘 적응해 온 나를 돌아보았다. 언젠가 며느리가 우리가족이 되면 새로운 규칙과 질서를 빨리 받아들여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도 자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갈았다. 커피 기물을 식탁 옆 선반에 모아 놓으면 ‘여기는 커피존’처럼 마음마저 향기로운 작은 공간이 만들어지지만,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동선에 맞게 배치하게 된다. 우리 가족은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 한 번 이상 커피콩을 간다. 주말에는 두 차례 커피콩을 갈만큼 우리가족은 커피를 좋아한다. 어쩌다 사용하는 와플팬은 씽크대 아래 깊숙이 넣어두고 사용해도 되지만, 날마다 사용하는 것들은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나는 좋다. 익숙하고 예쁜 셋팅을 선택할 것인지 효율적인 동선을 선택할 것인지, 작은 변화가 생기면 전체를 돌아보야야 한다. 나는 자동 그라인더에 커피를 갈 때마다 ‘유연해지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