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아 고마워
나는 단순 반복 작업 몇 가지를 좋아한다. 자몽 속껍질 까서 자몽청 담그기. 커피콩 두 스푼 가득 원통형 그라인더에 넣어 이백 몇 번에 가는 지 숫자 세면서 갈기. 주말드라마 보면서 멸치똥 까기, 같은 길 산책하면서 달라지는 풍경 보기 등 등
1989년, 스물두 살 때 나는 우황청심원 금박 입히는 작업을 좋아했었다. 검고 작은 구 모양 우황청심원에 99.9% 금박을 입히는 작업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엄청 조심했던 건 기억난다. 아마도 맨손으로 작업하지는 않았을거다. 위생상 그렇기도 하지만 종이장 보다 얇은 금박이 손에 묻기 때문이다. 어쩌다 금박이 손에 붙으면 지문이 보일정도로 얇았다. 그러면 손가락을 뜯어먹으려는 듯 금부스러기를 갉아먹었다. 순도 99.9% 금종이였기에 눈꼽만큼도 잃어버면 안 되었다. 금박은 종이학 접기 색종이처럼 정사각형이었고 네모난 나무상자에 담겨있었다. 금박 한 장마다 얇은 종이가 있었다. 아주 섬세한 작업이었다. 나는 그 당시 이 작업을 좋아했었다. 숨을 크게 쉬면 금박 종이가 휘리릭 말려버려서, 맨 처음 까만 우황청심원을 금박종이위에 내려놓을 때는 숨을 참아야 했다. 원구의 중심이겠다 싶은 곳을 금박 종이 한 쪽 꼭지점에 내려놓고 조심해서 마주 보는 꼭지점과 맞닺게 붙여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두 꼭지점이 만나도록 얇은 금박을 조심해서 붙여야 한다. 엄지 검지 두 손가락을 이용해 힘 조절을 해야 한다. 살살 돌려가며 금박을 씌우다가 우황청심원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금박은 어느 부분이 겹치고 어느 부분은 금박이 붙지 않아 검은 속살이 나온다. 금박이 백 장이면 황금 우황청심원이 백 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불량이 나오면 떼워야 하기 때문에 금박이 모라란다. 모자라는 금박은 자재실에 신청해야 한다. 일손이 섬세한 지 서툰지 금새 소문이 난다. 이 작업시간에는 잡담도 저절로 멈추게 된다. 우황청심원 작업은 날마다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감기약을 캡슐에 담는 일을 했고, 우황청심원 작업이 바쁠 때만 금박 싸는 일을 했다. 나는 이 작업을 좋아했었다. 금박 종이와 우황청심원 개수가 딱 맞게 만들어지면 마치 1등을 한 기분이었다.
'seratiopeptidase' 스펠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작업일지에 단어 하나하나 스펠링을 나눠 생각하면서 약 성분인 ’세라티오펩티다아제’를 기록했었다. 감기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색의 캡슐에 가루약을 넣는 작업이다. 캡슐 하나 당 그램을 30(한판에 몇 개의 캡슐인지 기억나지 않음)으로 곱해서 전자저울에 가루약을 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약을 판에 올리고 나무 주걱처럼 생긴 막대기로 고르게 분포해서 담아야 한다. 지금 기억에 A4 사분의 일 정도의 크기였다. 판 위 열린 캡슐에 정해진 용량을 골고루 넣은 작업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어느 부분이 부족하면 어느 부분에 많이 들어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손잡이를 움직여 캡슐이 가루약을 밀어 내게 한다. 많이 올라온 쪽 가루약을 부족했던 캡슐 쪽으로 보내 나무 주걱을 이용해 고루 넣어야 한다. 작업이 순조롭게 될 때도 있지만 보통 쉽게 되지는 않는 일이었다. 여러번 작업 끝에 가루약이 고루 들어갔다고 생각되면 손잡이를 조작해서 캡슐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기구를 조작해 캡슐이 쏟아지면 무작위로 몇 개 집어 전자저울에 무게를 재어본다. 오차가 크면 일일이 캡슐을 손으로 분리해서 다시 작업을 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이 단순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위생관리 되는 좁은 작업실에서 이 작업을 할 때 나는 약사는 아니지만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제약회사 다닐 때 일이다.
세상은 좁다. 제약회사에 입사해서 한달 쯤 지났을 때다. 미정이라는 친구가 물었다. “너 00전자 다녔었다며?” 말없고 조용한 친구가 갑자기 물어서 깜짝 놀랬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시한번 물었다. “너 미애언니 알지?” 미애언니는 내가 체커로 일했던 그 전자회사에서 나의 반장언니였다. 깜짝 놀랐다. 보통 회사에 새로운 직원이 오면 그 직원이 어디서 근무하다가 왔는 지 금새 소문이 난다. 미정이는 나를 알게 된 지 한달 쯤 지나 자기 언니에게 정미라는 애 어떤 아이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미애언니는 딱 두마디를 했다고 한다. “응, 그 애 똑똑해, 그리고 보통 넘어.” 나는 웃었다. 그리고 왜 한달이나 있다가 물어봤냐고 물었다. 미정이의 대답이 나에게 편견을 주의해야한다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언니에게 바로 물어보면 너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될까봐 내가 직접 겪어보고 물어보려고 했지?”지금 생각해도 동공이 커지고 머리가 열리는 기분이다. 미정이에게 물었다. “너가 본 나는 어때?” “응 너는 똑똑한 거 같아. 근데 너는 착한데?” 하면서 자기 언니와 의견이 다르다는 듯 말끝을 올렸다. 두 자매는 친하지 않은 것 같았다. 미모가 많이 달랐다. 미인형인 반장언니는 내가 느끼기에 광적인 믿음을 가젔었던 거 같다. 내 기억에 하나님도 몰랐던 내게 육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부모는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말을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엄마품 떠나 주야로 공장에서 일하는 십대 아이에게는 울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반장언니가 감정이 없는 예쁜 인형같이 느껴졌다.
전자회사에서 일을 할 때 나는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서 일하지는 않았다. 체커라는 직책으로 반장을 돕는 일을 했었다. 5년 넘게 다니면서 누구랑 다툰 적이 없었다. 딱 한번 남자 주임이 우리팀 동료에게 함부로 말해서 동료가 울었다. 나는 그 주임이 일하는 라인에 가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주임은 “썅, 이따 근무 끝나고 얘기해” 라고 쎈소리로 말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잠깐 보자고 했다. 쉬는 시간에 자초지종을 말하고 왜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동료에게 그랬냐고 하면서 사과해 달라고 강하게 부탁했다. 그 주임은 우물거리며 직원에게 사과했다. 같이 일하는 친구 정금이는 그 주임에게 따지지 말라고 말렸었는데 나중에 놀랐다며 말했다. “착한 애가 어디서 그런 깡이 나왔냐?” 내가 전자회사에 5년 넘게 다니면서 다툼이 있었던 적은 이 때 딱 한번이다. 어린 여공이라고 함부로 하는 주임의 태도에 말도 못하고 울먹이는 동료 때문에 나는 공식적? 항의를 했었다. 내 생각에는 그래서 반장 미애언니가 나 더러 보통이 넘는다고 했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선입견을 갖게 될까봐 직접 경험하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인식하려고 했다는 친구의 말로 인해, 나는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 특히,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걸 주의하게 되었다. 지혜로운 친구 덕분에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미정이랑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친구의 입술 옆에 꽤 큰 점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조용한 성격의 미정이도 믿음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단순작업을 좋아하지만 사람에 대한 민감성에 대해서는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