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여보~어디야?

무수리에서 신데렐라로

by 오잘줌마

"여보 어디야?"


"집이에요. 왜요?"


"어~햇살이 좋아, 집 나와서 산책좀 해. 서호천 갔다와."


"응, 고마워요. 오늘 날씨보니까 영상 4도까지 올라가더라구. 이따가 숙지산 갔다오려구요."


"잘했네"


"고마워요."


오십 대 후반 부부 대화다. 출근한 남편이 한가한 프리랜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보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서'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솔밭길에서 남편이 나타났다. 새댁들이 흩어지면서 누군가 한마디 한다.


"정확한 시간에 석호아빠 오신다. "


천오백만원에 방 한칸의 원룸형 전세의 첫 신혼집에서 갑자기 방을 빼달라고 했다. 근처에서 천만원짜리 방 한칸에 화장실이 대문 옆 계단 아래에 있는 1층 주택으로 이사를 가려고 계약금 10만원을 걸었다. 돌이 지난 아이랑 셋이 살려고 하니 한숨이 나왔다.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았다. 우리가족이 관사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용달차 한 대에 짐을 모두 실었다. 남편 동료분들이 도와서 3층 우리집에 짐을 올리고 짜장면을 시켰다. 마른 아카시아 꽃이 어린이 놀이터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너무 낭만적이에요. 남편 잘만나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게 됐네요."


남편은 그 당시에 '저 여자 대책없구나' 싶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남편은 가끔 밖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으면서 놀이터에서 마셨고, 4층 옥상에서 갈색 맥심커피잔을 들고 서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1996년 관사에 살 때, 우리부부는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틀이 멀다고 울었다. 집안에서 울었다. 굳이 집 밖에 나와서까지 울 필요는 없잖은가. 그러니까 이웃에서는 우리 부부의 두 모습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야~ 자기가 좋아하는 비가 오네. 창가에서 커피 마시고 있지?"


"어? 어떻게 알았어?"


부부싸움인지 일방적인 싸움인지 모르지만, 진짜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3일 쯤 지나면 남편은 은근슬쩍 편지와 함께 사과를 한다. 결혼해서 10년 정도는 편지가 사과문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잘할게요, 착한 당신을 또 울렸네요...'


못 생겼다, 부족하다, 멍청하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 모르겠다, 니가 잘하는 게 뭐가 있냐...


신혼 때 들었던 말들은 많은 경우가 나의 존재를 허무는 말이었다. 시어머니도 그랬다. 죽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가끔 '비가 오니까 당신 생각이 나네' 전화를 해주었지만, 아픈 말들이 더 많았다.


그 남자가 하루 일을 끝마치고 솔밭에서 걸어오면 훤칠하고 멋지다. 멋진 그 남자는 말로 사람을 쓰러트리는 기술이 있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 덕분에 울트라캡쑝킹왕짱 튼튼한 방패를 갖고 있었다. 몇 번 나가 떨어져서 피를 흘리고 쓰러졌지만, 끝내 나를 죽이지는 못했다.


그 남자가 오늘 전화를 했다.


"여보 날씨가 좋으니까 집에만 있지말고 산책을 해요."


내가 좋아하는 숙지산에 가야겠다. 브런치 마을에 입성한 지 며칠이 되었다. 라이킷에 '라이킷'을 응당 보내느라 아침을 못 먹었다. 글쓰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브런치 마을이 신난다. 몇 몇 작가의 글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점검해본다. 어느 작가의 글 단어 하나에서 나의 추억이 따라올라오기도 한다.


1993년 첫 아이 임신 6개월 쯤, 서울에서 넷째 시누이 결혼식을 했다. 큰며느리가 잔치벌인 시댁 집정리를 해야한다고 관광버스에 나를 태우고 정읍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우리가 사는 수원으로 혼자 갔다. 눈물이 찔끔 났다. 주책맞게 배가 고팠다. 누군가 쥐어 준 사과를 베어 물었다. 어둠이 내린 관광버스 창에 비친 내 모습이 서글펐다.


오래 전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무수리가 신데렐라 되었다'고 놀린다.


앞으로 나는 무수리 시절 사연을 쓰기도 하고 신데렐라가 된 이야기도 쓰게 될 것 같다.


30년 전 전세 계약금 십만 원이 아쉬웠지만, 돌려줄 수 있냐고 주인집에 끝내 물어보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잊었다. 울고 웃으며 주고 받은 가족 편지가 파일 세권이다. 내 인생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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