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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Feb 19. 2024

33. 조율

C코드가 제일 쉬웠어요

나는 1993년 4월에 결혼했다. 결혼 준비때도 신혼 여행 때도 힘들었다. 동네 전봇대에 묶여있는 지역 정보지 교차로를 매일 가져와서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면서 읽었다. 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머릿글과 목차를 읽고 오기도 여러번 했다. 어디서 봤는지 그 당시 전망 직업 두 개를 놓고 고민했다.      


피아노 조율사와 병아리 감별사     


가정집에서 조율사 과정을 레슨하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세류동에서 송죽동까지 버스를 타고 조율을 배우러 다녔다. 땡땡 해머가 건반을 때리는 소리를 마냥 신기해하며 피아노 줄을 조였다 늘였다 하면서 맑은 소리 고운소리를 찾아내려 했지만 귀에 들리기는커녕 귀가 떨어질 듯 ‘쩌렁’하며 줄을 끊어 놓을 때가 더 많았다. 피아노 조율을 힘으로 할 만큼 무모했지만 더 나은 삶을 원했기에 새댁이 비상금을 털어 그 당시 월 20만원이 넘는 괴외비를 내고 입덧을 참아가며 다녔다.      


한번은 안성에 있는 음대로 피아노조율을 갔다. 초보자는 끊어진 줄을 교체하고 선배들은 정확한 음을 찾고, 원장님은 최적의 소리를 확인하는 작업순으로 20여대 피아노를 수리?하고 온 적이 있다. 피아노 조율 훈련 두달 즈음 조율할 때 기준 음인 49번째 건반 ‘라’ 음을 정확히 찾았다. 하늘로 곧게 치고 올라가는 청아한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그 짜릿함도 잠깐 단음을 찾은 후 화음 부분을 조율하는 게 진짜 문제였다. 피아노 건반의 화음간 거리는 17cm정도 이고 최대한 쫙 편 나의 엄지손가락에서 새끼손가락까지의 길이는 19cm여서 ‘도’ 와 ‘도’ 사이의 건반을 누르기 전에 손바닥이 닿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선배가 따뜻한 물에 식초를 타서 손가락을 쭉쭉 찢으면(?) 효과가 있다는 소리에 며칠을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순간 피아노 조율사와 비슷한 전망을 했던 병아리 감별사를 도전할 걸 잠깐 고민했다. 작은 손을 탓하며 포기했다.      


결혼 전에 혼자 자취할 때 피아노랑 기타를 배운 적이 있다. 바이엘 상권을 마치기도 전에 큰언니가 ‘도레미파 알면 됐지 다 늙어서 왠 피아노냐?’는 말을 듣고 포기했고, 친구 정금이가 로망스를 칠 줄 알면 됐다고 해서 기타를 포기했다.     

 

7년 전 이사 간 아파트 뒷문 계단을 이용하면 서울가는 버스를 타기 수월했다. 버스 정류장 가는 길에 주민센터가 있다. 오가는 어느 날 수강생 모집 현수막을 보았다. 한 두 가지 관심있는 과목이 있었지만 우쿨렐레 초급반에 들렀다. 첫날 수업에 개인 악기를 가지고 와야 하는 것도 모르고 강의실에 앉았다. 선생님이 악기가 없으면 허공에 대고 스트로크를 하라고 했다. 1교시 동안 허공에서 코드를 잡고 오른손을 위 아래로 흔들면서 흥얼거렸다. 어느 순간 내 모습이 진짜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톡에 이 상황을 올렸다. 딸아이가 웃기다고 ㅋㅋ를 보냈다. 2교시에 강사님이 우쿨렐레를 빌려주었다. 스트로크가 진짜 소리를 내었다.     

 

우쿨렐레 첫 수업 상황을 자랑스럽게 페이스북에 올렸다. 음악하는 지인이 우쿨렐레를 저렴하게 줄 수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바로 송금했고 며칠 후 나의 우쿨렐레가 집으로 왔다. 3년 전 딸아이 생일에 c코드 위주로 생일축하송을 연주해주었다. 딸아이가 웃겨 죽겠다는 웃음소리가 축하송에 화음을 넣었다. 가끔  다시 봐도 웃음 엔돌핀이 나온다.      


우쿨렐레는 줄이 4개다. 작은 내 손에 감싸이는 크기라서 좋다. 우쿨렐레 조율기를 구입했다. 전자식으로 각 줄의 최적음을 잡아준다. 일주일에 한번 수업을 가면 수업 시작 전에 조율을 한다. 어려운 코드는 패스 하고 손에 익숙한 코드 위주로 잡는다. 스트로크는 손톱으로 하고 창 밖을 보면서 가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 모습이 전문가 같다고 강사님이 말했다. 수강생 언니들이 뒤돌아보고 그렇다고 웃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음악과 함께 하는 힐링시간이었다.      


사는 것도 그렇다. 뭐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성격상 좋은 것을 좋다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가끔 나의 주관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일으키지만 이래저래 눈치채는 순간 잠깐 창피하고 다시 나를 돌아본다. 그 시간이 나의 삶을 조율하는 때다. 단음 조율을 마치고 마치 전문가가 된 것처럼 기뻐 날뛰지만 화음을 맞추는 건 더 어렵다. 자기조율과 타인과의 조율이 필요하다.


나는 즐거워서 악기를 배우고 행복하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가수 한영애님이 부른 노래 조율이 생각난다. JK 김동욱님이 불러서 알게 된 노래다. 새 학기다. 새로 이사온 동네 주민센터에 우쿨렐레 초급반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다 까먹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c코드랑 f코드만 기억난다. 튜닝기 배터리를 새로 끼워야겠다.     

 

조율

-노래 한영애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잡는다면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 서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우~ ~ ~

내가 믿고 있는 건

이 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

내일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스티브 연)과 모니카(한예리)가 미국으로 이민가서 병아리 감별사 일을 했다. 나는 혼자서 영화관에 앉아서 울고 웃었다. 해피엔딩인가. 제이콥 가족이 농산물 납품을 약속 받고 행복하게 돌아올 때 집이 불타고 있는 장면을 보고 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뭐야 죽어라죽어라하는거야'



할머니 손을 잡고 돌아서는 데이빗과 앤의 모습에서 사랑을 보았다. 해피엔딩? 삶은 ing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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