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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Feb 22. 2024

34. 오잘을 꿈꾸는 인간 배정미

가족은 행복입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좋아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웃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하루하루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았다. 30년 전에는 힘들다는 투정도 철없고 사치스러웠다.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 라는 문구는 불편했다. ‘무사히’라는 말에는 걱정과 염려가 전제된 기분이라 아슬했다.      


‘오늘도 잘했어’ 어떻게 날마다 행복할 수 있겠냐만,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더 자주 떠올렸다. 그러다 그만 행복발견 전문가가 되었다.     

 

친구들이 ‘오잘’이라고 불러주었다. 나의 닉네임이고 필명이 되었다. 오잘이라고 불러주어서 나는 ‘오잘’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잘했어!     


자기 분깃을 달라 해서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가 철없는 녀석인 줄 알았다. 돌아온 탕자를 맨발로 반기는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서 송아지 한번 잡아줬냐고 서운해하던 그의 형이 ‘사랑이 부족하고 샘이 많은 헝아’라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나의 부족한 헝아마음을 보았다. 여동생에게 생일축하 케익을 받았다고 자랑한 작은 언니가 잠깐 얄미웠다.




엄마는 건강하게 살아계신 존재 자체로 기쁘고 감사하다. 큰언니는 내가 어릴 적에 편도선 수술하고 아이스크림을 약으로 먹어야 할 때 “한 숟가락만 더 먹자”고 달래면서 녹두죽도 끓여주었다. 작은 언니는 “먹기 싫다는데 그만 줘” 하면서 앙칼지게 말했다. 칫, 목구멍 찢어지면 지도 아이스크림 넘겨보라지.     


작은 언니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얼굴이 까매졌을 때도, 전기세 내지 못해서 전기 끊긴 냉방에서도 잘 견뎌주어서 눈물 나게 고맙다. 나는 돈 많이 벌면 작은 언니에게 가게를 차려주고 싶었다. 언니가 자기 힘으로 예쁜 카페를 차리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가끔 전화한다.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그럼 됐고말고.


여동생은 내가 신혼 때 힘들다고 질질 짜면 자기도 힘든데 나를 위로했다. “언니, 같이 살면 싸워도 화해하기 쉬운데, 따로 살면 싸우지 않는 게 좋아. 명절에만 만나는데 회복하기 어려워.” 남편은 내 동생을 ‘천사 처제’라고 불렀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고생하는 엄마께 수학여행비 달라는 말이 입에서 안 떨어졌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인가 난생처음 바다에 놀러 가서 하얗게 부서지며 달려드는 밤바다 하얀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울었다고 한다.     


20년 전쯤 우리 오 남매랑 조카들이랑 노래방에 갔다. 나는 이정현의 ‘와’를 새끼 손가락 세우고 춤을추면서 불렀다. 남동생은 템버린을 어깨 팔 손목 허리 엉덩이 허벅지를 거쳐 다시 어깨로 돌아오는 타법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했다. 현란한 탬버린 연주에 과묵한? 나의 남편이 주저앉으며 웃었다. 마흔 살 조카는 지금도 그때 그 노래방 분위기를 이야기하며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입담 좋은 남동생과 여행을 가면 가이드님들은 사업하냐고 묻는다. 학교 선생님이라하면 놀란다. 그 남동생이 올해 교감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가족여행을 다녀오면 잘 나온 사진을 실사현수막 만들어 친정 엄마댁 거실에 걸어둔다. 동네 분들이나 석유 넣으러 온 아저씨가 보기 좋다고 한단다. 전화기 속에서 엄마 목소리가 웃는다. 그래서 나는 ‘프랜카드 배’라고 놀리는 남편과 제부 말에도 기어코 프랜카드를 만든다.      

2012년 엄마 칠순축하 가족여행 태국 농 눅 가든.

고마운 기억을 브런치에 새긴다. 서운한 마음은 눈 위에 적어야겠다. 어쩌면 더 쪼잔한 심보가 발동하는 어느날 서운한 일을 쩨쩨하게 일러바칠지 모른다.      


탕자의 헝아 마음도 공감해줘야 한다. 우린 사람이니까. 나도 사람이다. 해명의 욕구를 용기내고 가면증후군은 내려놓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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