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에 피땅콩을 까먹었다. 쌍둥이 농장하는 큰언니가 챙겨준 땅콩을 보름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다. 피땅콩은 180도에 7분 예열한 에어프라이어에 8분 정도 돌리면 고소하게 볶아?진다. 내가 해먹고 큰언니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나지않는데 지난번 언니네 놀러갔을 때 언니가 말했다.
호두농장하는 큰형부는 손끝이 야무지기로 예전 양말공장에서부터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땅콩은 큰언니가 좋아해서 호두밭 가장자리에 조금 심었다고 한다. 농산물이라는게 조금 심어도 한 가족이 먹기에는 수확은 적지않다고 한다. 로컬푸드에 등록되어있는 언니네 농장은 호두와 블루베리를 제외하고는 몇 푼 용돈벌이 정도다.
아로니아는 용돈벌이도 되지않는데 수확만 넉넉해서 골머리를 앓더니 나무를 베어버렸다. 몇 년 된 아로니아 효소는 카페하는 작은 언니에게 큰 유리병째로 줬다고 한다. 보통'매실액' 이라고부르는 효소 중에 색이 곱고 맛이 깔끔하기로는 아로니아 효소만한 게 없다고 큰언니가 말했다.
지난 가을 큰언니네 놀러갔다가 둥그런 소쿠리 서 너개에 땅콩을 말리는 모습을 보았다. 뽀얗게 씻어서 명품 햇살 아래 말리는 땅콩을 보는 순간 마음이 짠했다. 사람 만나서 수다떠는 거 좋아하는 큰언니의 한가로운 농장생활을 조카 경미도 안타까워한다.
큰언니네 농장에서 배추와 무를 심어서 몇 년 째 김장을 하고 있다. 김장이 끝나고 엄마가 오셨을 때 언니네 놀러갔다. 호두랑 땅콩을 까서 포장하고 있었다. 피호두는 판매가 좋지않아서 큰형부랑 언니가 분담해서 호두를 깐다. 솜씨 좋은 형부가 특수제작한 도구로 호두껍질을 깨면 언니가 호두속을 분리한다. 집에 돌아올 때 피호두랑 피땅콩을 한 봉지 담아주었다.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쓰렸다. 보름에 먹을 겸 서랍에 넣어두었던 피땅콩을 에어프라이에 구웠다. 정말 고소하다.
구운 피땅콩을 식탁에 올려두고 오며가며 몇 개씩 까먹었다. 처음 몇 개는 눈에 띄게 예쁜 것을 까먹다가 작고 못생긴 것을 먹었다. 못생긴 걸 골라먹다가 예쁜 게 나오면 작은 접시에 따로 모았다. 마지막 땅콩이라고 하면서 깐땅콩 열 알을 퇴근한 남편에게 줬더니 좋아한다.
온라인 진로수업 첫녹화를 했다. 9학기째 온라인 수업이라 학교에 가지 못한 지 5년이 되었다. 매 학기 대면수업이었으면 좋겠다는 설문을 보지만 학교 방침이니 나도 어쩔 수 없다. 나도 힘들다. '사서 고생 유형?' 수업 때문에 수업을 그만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 연구해 논 자료가 책 한권인데...
수업 방법을 바꾸었다. 학기말 진로 수업의 최종목표를 첫 주차 목표로 정했다. 목표점을 보여주면 그 곳까지 가는 과정이 덜 지루하고 더 재밌고 의미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첫 날 녹화를 위해 교재정리를 마무리하느라 며칠을 컴퓨터 작업했더니 눈앞이 흐리다. 워크북 형태의 교재라서 기록하기 편한 홀수 페이지에 비중있는 워크지를 맞추느라 수십 번을 확인한 것 같다.
드디어, 오늘 첫 수업 녹화를 마쳤다. 스마트워치에 50분 알람 설정을 못해서 25분을 설정해서 두 번에 거쳐 시간을 맞추었다. 다행히 1교시는 잘 했는데, 2교시 녹화본을 보니 25분을 세 번 했나보다. 1시간 18분이다. 오마이갓!
잠깐 고민했다. 안돼 안돼! 첫 수업이 어마무시하게 시간초과된 걸 우리 리더들이 알면 얼마나 싫어할까. 다음 수업에 흥미가 뚝 떨어질지 몰라. 그것도 그거지만, 솔직히 민폐교수 등극하는거지. 삭제. 다시 옷을 챙겨입고 녹화했다. 50분 금방이구먼. 목이 컬컬하다. 녹화본 확인해보니까 나답지 않게 목소리가 중간 중간 째진다. 난 목소리 좋다는 칭찬을 밥 먹듯 들은 사람인데, 딸아이가 나트랑 여행가서 사온 스트랩실 캔디 하나를 먹었다.
미괄식으로 피땅콩을 까먹었지만, 매우 소중한 수업은 두괄식으로 했다. '참 잘했어요' 수업은 중요하니까 두괄식으로, 땅콩은 큰언니의 수고로움의 생산물이니까 미괄식으로 아껴먹는 게 맞는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나를 위한 일에도 적극적으로 두괄식으로 살아야겠다. 소화기능은 줄고 옷맵시도 줄고 나이는 늘어가니까, 소중한 걸 먼저 나에게 먹이고 입히자.
'투자 대비 성과 없는 일을 왜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가까운 지인의 말에 오늘 하루가 무너지는 기분이다.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떡을 써마' 갑자기 한석봉엄니가 생각났다.
고생은 내가 했으니 너희들은 더 멋져지렴. 나는 앞으로 좋은 걸 먼저 적극적으로 먹을 거다. 좋은 옷을 아끼지않을거고 좋은 화장품을 넉넉히 바를 거다. 에잇! 아낌없이 다 줄거야.
뜨거운 사우나하고 들어오자마자 사과했으니 머리 큰 이남자도 잘해줘야지. 어? 그나저나 나 총체적 몸매가 두괄식이 되어가는거 같다. 하체부실 안돼~ 마음 단디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