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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Feb 29. 2024

37. 나의 3월 이야기

초등학교 입학 적응기

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 29일이다. 내일은 3월의 시작. 3월부터 본격적으로? 봄이다. 얼었던 물이 녹는다는 우수도 진즉에 지났고 닷새만 지나면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칩이다. 무엇보다 3월은 입학의 계절이다. 최근 몇 년은 코로나로 재잘재잘 하하호호 입학식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3월은 새로운 시작이 어울리는 달이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두 번의 3월이 있다. 2005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한 다음 날부터 나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생활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아이가 등교한 첫날엔 출근해서 아침 조회만 마치고 바로 집으로 왔다. 그리고 교문 앞에서 마중을 했다. 둘째 날도 출근해서 아침 조회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학교 앞 횡단보도 건너에서 딸아이를 기다렸다. 아이는 한 손을 높이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셋째 날엔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를 기다렸고, 넷째 날은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다섯째 날엔 집에서 아이가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기다렸다.    

  

3월 한 달 동안 출근해서 아침 조회만 마치고 집으로 왔다. 이때 나는 유아교재 방문판매원으로 일을 했다. 일찍 집에 와서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오뎅을 꼬치에 꽂아서 끓여주기도 했다. 주먹밥을 만들어 먹고 과일주스를 만들어 주면서 소꿉놀이하는 기분이었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눈물 나게 행복했다.    



 

2002년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거리도 멀었지만 4차선 육교를 넘어서 골목으로 한참 가야 하는 거리였다. 입학식 다음 날부터 여덟 살 남자아이를 그 먼 학교까지 혼자 가게 했다. 육교를 올라가는 걸 보고 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먹으라고 스크램블 에그 비빔밥과 소시지를 작게 잘라 삶아서 통에 담아놓았다. 급식을 하지 않을 때였다. 친구들이 군것질할 때 먹고 싶을까봐 천원을 놓아두고 다녔다. 작은 스프링 수첩에 사랑한다는 쪽지를 남겼다. 일 년 내내 식탁에 차려진 식은 밥을 먹으며 혼자서도 잘 지냈다. 한참 후 스프링 수첩에 주고받았던 쪽지를 보았다. 나 자신이 알량스러워 화가 났다.     


‘사랑하는 석호야~ 천원을 다 쓰는 건 좋지 않으니 저축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라는 나의 메모를 보았을 때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날마다 군것질을 했다. 어느 날은 ‘컵떡볶이 300원’, ‘컵순대 500원’, ‘미니카 1,000원’. 이때도 나는 유아교재 방문 판매일을 했다.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할 줄도 모르고 아이를 혼자 둔 미안한 마음에 무조건 열심히 일을 했다. 두고두고 이때 일을 후회했다. 그래서 작은 아이가 입학한 3월을 후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3월이 오면 나는 제일 먼저 나의 두 아이가 생각난다. '대한독립만세' 도 '유관순 언니'도 한참 있다 생각난다. 나라는 인간은 이기적으로 산다. 내가 행복한 게 우리나라가 행복해지는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이론을 앞세워서 말이다. 이런 아픈 일들이 쌓여 나는 나의 두 아이의 모교 앞에서 행복한 마을만들기 '오잘운동'을 시작했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행복운동은 하고 싶다는 거창한 바램을 담아서. 


나는 3월 1일이 오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변명하지만 나 스스로 흡족치않다. 시지프스의 돌 굴리기처럼 살아가는 일이 힘겨웠다. 그래서 하루 하루 내 앞에 주어진 삶을 그냥 열심히 살았다. 


오! 마이갓! 내 인생이 이렇게 신나고 행복해질줄이야. 꿈에서도 빌었다. 내일은 태극기를 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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