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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22. 2021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자들

[책 리뷰]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EYE


눈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우리의 눈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게끔 도와주고, 아름다움을 담고, 눈에 보이는 것을 신뢰하도록 만든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본 세상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깨끗한 도시, 질서정연한 거리, 활기찬 가게와 그 앞을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반짝이는 눈들이 빚어낸 찬란한 삶은 서로 부딪히며 세상의 궤도를 그려 나간다. 그렇다면 눈을 감고 바라본 세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암흑으로 가득 차, 오직 두 귀에만 의지한 채 만나게 되는 세상. 단 1분만 눈을 감고 걸어보라 한다면, 얼마 못 가 방향감각을 잃고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두려움에 멈춰설 것이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 온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인다면, 질서와 매너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이 깨끗한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눈먼 자들의 도시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눈을 찬란한 백색의 빛으로 가리고, 오직 한 사람 '안과의사 아내'의 눈만을 남겨두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에, 세상은 혼란과 폭력, 무자비함으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속에서 더 이상 인간적 도의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서운 속도로 전염된 실명 상태는 온 세상을 백색의 빛 안으로 집어 삼켰고, 방황과 두려움이 가득 찬 도시에는,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인파로 온갖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난다.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재앙을 그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뒷내용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추접한 본성을 그림으로써, 독자의 정신마저 피폐하게 만든다. 구분되어 있지 않은 대화체, 페이지 내 빼곡히 쓰여 있는 긴 문장, 인간이길 포기한 듯한 더러운 상황 연출은, 유려한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상상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는 독서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과연 작가가 단 한 사람의 눈 외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하여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BLINDNESS


눈을 감아야만 드러나는 세상이 있다. 눈이 멀어야만 보이는 진실이 있다. 우리는 광활한 세상의 모습을 두 눈으로 담지만, 그 중 오직 '보고 싶은' 아름다움만을 기록하고 저장한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의 고상함만을 바라보고, 호수 아래 발버둥치는 다리는 바라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라마구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깨끗해만 보이는 거대 도시 이면에, 모든 이들이 '눈을 감고' 외면한 사회의 진실된 모습을 다양한 '알레고리'를 통해 지적한다. 



알레고리 Allegory
; 어떤 추상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하여 구체적인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방식. 인물, 행위, 배경 등이 일차적 의미(표면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이야기다. 



세상에 남은 단 하나의 눈, '의사 아내'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재앙 속 두려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변해간다. 기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던 질서, 이성, 규칙, 감정 등은 아예 의미를 상실하였고, 대신에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거대한 "사회"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개인의 이기주의, 욕심, 더럽고 나약한 이면이 표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무정부 상태 속 인간세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의사 아내'는 말한다. 우리는 이미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사라마구는 '욕심'에 눈이 멀어 인간성을 잃고, 눈 앞의 이익만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인간들로 가득 찬 세상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깔린 인간의 본성을 결코 바라보지 않는 사회를 "눈먼 사람"들로 대신한다. 가치와 윤리를 상실한 세상에는, 이미 모욕과 치욕스러운 일들이 넘쳐나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은, 이미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세상의 뒷모습을 자체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에 저자는 모든 이들의 눈을 멀게 하여, 모순적인 세상에 대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떠라" 말한다. 나는 과연 세상의 진실된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는걸까? 나 또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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