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를 잃어버린 꿈에 관하여
<파괴되지 않는 것>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경이로운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30-
언젠가 친구와 서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4년 전에도, 2년 전에도, 1달 전에도 우리는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4년 전,
내 친구는 '선한 영향력을 전해주는 드라마 피디'가 되고 싶어 했다. 장래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구체적인 꿈이 있는 그녀가 진정한 어른 같아 보여 멋있었다. 나는 그녀를 모델 삼아 나만의 길을 찾겠노라 다짐했다.
2년 전,
드라마 피디를 꿈꾸던 친구는 드라마 제작의 막내 연출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 방송국 공채로 들어가길 희망했지만,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 현장을 직접 부딪히며 그 세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친구는 드라마 한 작품을 성실히 마치고 난 후, 자신이 동경했던 세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드라마 피디의 꿈을 접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길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시기 나는 혼자 방 안에서 SNS 속 나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며 내 꿈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의 콘텐츠를 수익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지금 잘하고 있는지 확인이 들지 않던 나에게 친구는 '너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라며 응원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성실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고, 직접 부딪히며 세상을 알아가는 친구를 곁눈질하다 보니 우물 안에 갇힌 것처럼 나의 세계는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1달 전,
드라마 피디의 꿈을 접게 된 친구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방황의 시기를 맞았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로부터 조언을 구했고, 답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나섰다. 친구는 걷고 또 걸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오래전부터 가슴속 깊이 품고 있던 '글'이 그녀의 길에 동행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걷는 순간순간마다, 글자들이 아름다운 음표처럼 눈앞에 떠다녔다고 말이다. 순례자 길을 마치고 그녀는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꿈을 향해 멋지게 나아가는 친구와는 다르게, 나는 4년 전, 아무 목표도 없던 그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다. 나에 대한 실망과 포기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창피함에 그 누구에게도 나의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곤 또 혼자 꿈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돈이나 벌어서 내 앞가림이나 잘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이제 그만하자며 나를 다독이며 돈 벌 곳을 찾아 나섰지만, 줄곧 형체를 잃어버린 꿈이 나를 따라다녔다.
친구를 만나 이런 나의 근황을 전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친구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이제 그만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미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서글픈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꽤나 구질구질하게도, 나만의 길을 다시 한 번 찾아보겠다며 친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의 미래를 친구에게 허락받을 필요 없지만, 나는 친구를 통해 다시 잘해볼 수 있다는 믿음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얘기를 듣더니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아직 네가 너의 꿈에 미련이 많나 보다. 그럼 끝까지 해봐야지.
꿈에 대한 너의 미련이 다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너를 많이 응원해."
집에 돌아와 메모장에 완성하지 못한 채 끄적여만 놓은 글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다시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아 흘기듯 적어 놓은 글들이 이미 100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30-
형체를 잃어버린 채 나를 쫓아다니던 '그것'이 내 안의 '파괴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카프카의 말처럼 그것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지만 않다. 놓지 못한 그것은 나를 결국 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안의 미련이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출발선에 설 것이다. 그건 다분한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활력제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나의 비현실적인 꿈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보려 한다. 기록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던 그것이 형체를 띄며 내 앞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꿈을 찾아 나선 친구처럼, 나 역시 적극적으로 바깥세상으로 나가볼까 한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 '나'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
나의 새로운 시작은 유튜브다.
글을 쓰며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의 생각을 영상 속에 담아 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