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고 기특한 불행 | 오지윤 | 책리뷰
미디어나 SNS, 책 등 각종 매체에서 우울과 행복, 특정 감정들이 유독 강조되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내 안에서 진중하게 다뤄줘야 할 감정이 가볍게 주입되어, 마치 찍어낸 사진처럼 단순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특정 감정을 내세운 책은 인기와 공감을 얻지만, 다 읽고 나면 괜한 공허함이 남는다. 감정을 일부러 무겁게 다룰 것까진 없지만, 떠먹여 주듯 빠르게 소화되는 ‘공감’ 문구들은 개인에게 충분한 돌아봄의 시간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오는 책들보단 죽은 이들의 책을 선호한다. 몇 백 년이 지난 글임에도, 그들의 문체 속에서 나의 삶을 발견하고 감정을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내 삶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책을 애정한다.
[작고 기특한 불행]은 서점에서 3번째 마주한 끝에 구매한 책이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파란 표지와, ‘불행’이란 단어에 ‘작고 기특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물속에 잠수한 사람, 제목에 '불행'이라는 단어를 보고, 지레짐작하여 우울에 점철된 글들만 잔뜩 적혀 있을 것 같아 괜한 거부감이 들었다. 삶을 녹여낸 글을 좋아하지만, 과한 우울, 과한 행복이 잔뜩 묻은 글에 피로감을 느끼기에 겉으로 책을 후루룩 넘겨본 후 다시 내려놓곤 했는데, 3번째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이 정도로 눈길이 간 책이라면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나의 편협한 편견 때문에 이렇게 좋은 책을 놓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읽을 때 독서 기록을 하기 위해 맨 위에 책 제목을 적는데, 자연스럽게 책 제목란에 [작지만 불행한 행복]이라고 적었다. 작지만 불행한 행복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꽤 섬뜩한 제목이다. 불행한 행복이라니. 그럼에도 지루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내 무의식은 당연하게 수식어의 주체를 '불행'이 아닌 '행복'이라 생각했다. 나는 ‘불행’에 대처할 힘이 부족해, 자주 눈 감아버리는 방법을 택해버리고 만다. 사사건건 들이닥치는 사소한 '불행'들에 짜증을 내며 어거지로 잡은 작은 '행운' 뒤에 몽땅 가려버린다. 그러나 저자는 ‘행복보다 빈번하게 우리의 일상에 찾아드는’ 불행의 조각들을 모았다. '크고 작은 불행을 마주하는 일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눈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하루에 필요하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서였을까, 과하게 '나만의 행복'을 찾을 거라며 나대고 다녔다. 뜬금없이 여행을 계획하거나, 평소에 잡지 않는 약속을 몰아서 잡고, 일부러 자연을 느끼겠다고 풀과 나무,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웃긴 영화, 소설을 찾아서 읽었다. 딱히 우울하진 않았지만 내 인생에 행복할 거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졌었다. 그러나 며칠간 다분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큰 '행복'은 찾지 못한 채 나는 다시 나의 평범하고 별것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엔 하나의 수식어를 더 붙여,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깨달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이란, 생각보다 단순한 녀석이 아니구나,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왜 굳이 '불행'에 '기특한'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궁금했다. '작고 기특한 행복'이었으면 모를까,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저자가 조금씩 모아 온 불행의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것들은 이곳저곳에 깊게 뿌리내린 그녀의 삶의 조각들이었고, ‘불행’의 뒷면에는 신기하게도 '행복'이 함께했다. 내 인생만 존X 고통스러운 것 같은 날, 불행을 먹고사는 요괴 마냥 친구의 인생도 녹록지 않다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고, 세상이 무너질 듯한 가족의 병 소식은 그냥 넘어갔던 가족의 작은 미소까지 소중히 대할 수 있게 해 주며,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겨 주신 부추는 이별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루에도 '불행'은 예고 없이 수시로 찾아온다. 눈물과 한숨 뒤에 숨기기 급급했던 불행을 직접 마주하다 보면, 어쩌면 뒷면에 숨겨진 생각지 못한 행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감정을 하나하나 따로 떨어진 명사로 취급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수십 번씩 달라지는 다양한 감정들이 얽히고 얽혀, 우리 안에 행복, 불행, 그럼에도 살아감, 이란 단어들을 심어주는 듯하다. 그렇기에 '진정한 행복'을 잡기 위해선, 매일 찾아오는 갖가지 감정과 잔상들을 굳이 외면하지 않고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안에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크고 작은 행복을 움켜쥐며 살아가는 것이, 삶인가 보다.
[작고 기특한 불행]은 카피라이터 오지윤의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이 담긴 산문집이다. 저자는 평범한 삶의 단면을 세심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선명하게 그려 놓았다. 한 편 한 편, 제대로 된 여운을 느낄 새 없이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어수선했다. 천천히 그녀의 언어를 소화하고 싶었다.
약 200페이지의 책을 읽는데 나의 감상이 수시로 변함을 느꼈다. 처음엔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엿보는 것 같다가, 나와 너무 똑같은 생각, 고뇌를 하고 있음에 반가움과 친근감을 느끼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만의 탁 트인 시야에 '와-' 감탄하며 은근한 시샘을 느꼈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종종 섞여 있는데, 혼자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 간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들었다. 같이 소리 내서 웃으면 엿듣는 게 들키니까, 풉-하며 조용히 미소 짓게 되는 그런 대화들. 함께 껴서 이야기하고 싶은 대화들. 나와 정말 비슷하지만, 굉장히 다른 사람이라 느껴졌던 작가,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