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앙: 단팥 인생 이야기 | 가와세 나오미
커다란 벚꽃나무 아래에 위치한 조그만 가게에서 어쩐지 무기력하게 '도라야키' 반죽을 굽고 있는 주인 '센타로'. '도라야키'는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일본 전통 단팥빵으로, 빵 안에 들어가는 팥소가 도라야키의 생명이다. 그러나 센타로는 정작 중요한 팥소는 시중에 파는 기성품을 이용하고 대신 빵 만들기에만 열중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어느 날, 센타로의 가게에 76세 할머니 '도쿠에'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찾아 온다. 그녀는 공짜나 다름없는 시급을 제시하며, 꼭 자신을 써달라고 부탁하는데, 어르신을 알바로 고용할 수 없었던 센타로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러나 팥소를 '마음을 담아' 만들겠다는 도쿠에 할머니의 정성에 결국 그녀를 고용하게 되고, 도쿠에의 단팥 덕에 도라야키는 남녀노소에게 날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라야키 가게 단골 소녀 '와카나'의 실수로, 남모를 사연으로 손에 장애를 갖고 있던 도쿠에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며, 도쿠에는 쫓겨나듯 가게를 그만두게 된다. 도쿠에가 감추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녀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났을까?
리뷰 |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스포O)
단팥이 생명인 '도라야키'를 팔면서, 정작 빵 만들기에만 집중한 채, 시판에 파는 값싼 단팥을 사용하는 '센타로'. 삶의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사람처럼 무기력한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그는, 자신이 만드는 단팥 빠진 도라야키를 닮았다.
센타로는 과거 실수로 인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다. 그 후 평생 일해도 갚지 못할 빚을 갚기 위해 도라야키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채 작은 도라야키 가게에 숨어 앙꼬 빠진 찐빵을 팔고 있다.
그런 센타로의 앞에 불현듯 '도쿠에'가 등장한다. 도쿠에는 76세의 나이에 손에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 건 그녀가 단팥을 만드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팥이 보아 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며 정성스럽게 단팥을 만든다는 도쿠에. 그녀는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말이다.
도쿠에는 '나병', '문둥이 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환자로, 한평생 강제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격리시설에서 살아왔다. 손발이 문드러지거나 굽어버리거나, 코가 떨어지고 얼굴에 변형이 오니,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환자들을 사회는 '나병 예방법'이라며 그들을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었다. 평생을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자유를 잃어버린 채 좁은 공간에서 살아온 도리에는, 어느 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밑을 지나다 조그만 가게 안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눈을 가진 센타로를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를 격리시킨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를 보고는, 그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해 도쿠에는 그의 삶으로 들어간다.
작은 새 한 마리를 키우는, 도라야키 가게 단골 소녀 와카나. 그녀는, 남자와 돈을 밝히는 철없는 엄마 밑에서 자라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딘가에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다.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갖고 키우는 새 '미비'는 밤마다 시끄럽게 지저귀는 바람에, 그녀의 엄마는 새를 다른 곳에 보내라고 말한다.
'와나카'는 도라야키 가게에서 일하는 '도쿠에'의 손에 장애가 있음을 깨닫고, 그녀의 병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도쿠에가 '한센병'을 앓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녀의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하게 되고, 그 바람에 도쿠에는 다시 쫓겨나듯 가게를 떠나게 된다.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한센병은 신체의 변화와 함께, '전염'이 된다는 무서운 소견에 힘입어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1996년 이후 치료를 받은 한센병 환자들은 전파 감염을 시키지 않고, 장기간 접촉하지 않는 한 전파 감염률이 낮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나병 예방법'이었던 환우의 강제 격리는 폐지되었다.
손발이 문드러지고, 얼굴에 심한 변형이 생길 수 있는 병이지만, 오랜 세월 한센병 환우들을 괴롭힌 것은 그들의 변형된 얼굴과 손보다도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었을 것이다. 극 중 눈치를 보며 주위를 서성이던 '도쿠에'의 깊은 눈을 마주하며, 비단 한센병 환우들의 이야기가 아님을, 어떠한 연유로 사회의 눈총을 받는,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임을 되새긴다.
자의로, 타의로, 사회로부터 격리된 자들은 작은 도리야키 가게에 모였다. 도쿠에와 센타로는 조그만 주방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팥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팥이 단맛을 낼 때까지 천천히, 뭉근하게 끓인다. 밭에서부터 힘내서 왔을 팥이기에, 극진히 모셔야 한다는 도쿠에. 한평생 한정된 공간에 갇힌 채 생애를 보낸 그녀는, 그녀를 둘러싼 모든 생명체의 이야기를 곰곰이 들으며 좁은 공간 속에서 너른 한 삶을, 살아 있음을 느꼈다.
'보호'라는 이름 뒤에 자유를 박탈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둔 이기적인 인간들 대신, 흘러가는 대로, 세상의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생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생명력을 보며, 도쿠에는, 본인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한다. 그런 도쿠에를 처음으로 편견 없이 받아 준 센타로는 그녀에게 '세상과의 연결'을 선물한다. 그녀는 결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사회 속에서 함께 성취하고 추구해 나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도쿠에는 우리에게, 정성껏 오랜 시간 공들여 끓여야 가장 맛있는 단맛을 내는 단팥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려준다. 특별히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세상을 뭉근하게 맛보고, 느끼고, 아껴준다면, 각자만의 사정은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끝으로 '와카나'는 '도쿠에'를 찾아가 그녀가 키우던 새 '미비'를 맡긴다. 도쿠에는 와카나에게 대신 잘 키워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철장 속에 갇힌 미비를 멀리,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작은 새장 속 갇혀 살아온 미비처럼, 도쿠에는 센타로와 와카나에게 누구보다도 넓은 세상을 느끼는 법을 알려주고 자연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