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7
Ep007_애초에 이맛이 그 맛인지 비교할 데이터베이스가 없으므로 난 태국요리를 잘하는 것으로
1월 시린 한국의 공기를 품고 태국 햇빛을 받으러 나는 갔다
Ep.007
나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면서 태국요리 배우려고-라는 노래를 지어 부른지 일 년
어디서 주운 생각인지 누구에게 주워들은 생각인지 찾을 길이 없지만
어디서 치앙마이가 좋다-는 몸통 하나
어디서 태국요리가 맛있다-는 머리 하나
어디서 태국에는 요리교실이 많다-는 일체형 다리 하나를 주워 조립하니 내한테 심어진 그 몹쓸 씨앗이고잉.
어쩌겠어. 과거의 내가 난데없이 씨를 뿌렸으니 거두는 것은 현재의 내가 해야 안 되겠나.
치앙마이에 온 지 만 하루. 할게 없었다. 진짜. 똑! 떨어진 것도 아니고(애초에 뭐가 있어야 똑! 떨어질게 아닌가)
마냥 하고 싶었던 일들을 급하게 떠올리기 시작했고 당장 먹고 싶은 부분이지만 가장 맛있는 주제에 양이 조금밖에 없어 아껴두고 맨 마지막에 먹는 생크림을 참지 못하고 초반부터 먹어치우는, 그래서 가장 맛있는 부분을 먹고 있음에 기분이 좋지만서도 앞으로는 밍밍한 맛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의 플로우에 몸을 맡기며 요리교실을 신청하고야 말았다.
그래 이 수업을 들으면서 혹시 친구가 생길지 몰라.(정말 모를 일이더라) 일찍 친구를 만들수록 그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을 테니, 그래 일찍 듣는 것이 좋겠어.(역시 꽃 중에 화를 부르는 가장 몹쓸 꽃은 자기합리화) 영화로 치면 별 반 개도 아까울 개연성으로 그렇게 요리교실과 약속을 맺는다.
일요일에는 모두 선데이마켓 구경을 하느라 요리교실은 신경도 쓰지 않을 거야. 여긴 쉬러 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침 댓바람부터 요리교실에 오지 않겠지. 사람들도 오전보다는 오후에 좀 더 활발해질 테고. 월요일 오후가 좋겠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요리하기 위해 일요일 저녁/월요일 오전/월요일 오후라는 고작 세 개의 경우의 수에서 최고의 개연성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을 듯 막막했던 나의 월요일은 치앙마이가 만들어주는 일을 그대로 받아먹느라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요리교실이 끝나는 저녁까지 잠시 앉아 쉴 틈도 허락받지 못 했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 까만 콧물을 흘리며 돌아다녔지 싶다. 아무튼 이날은 우연과 타이밍이 만들어준 친구와 스쿠터를 빌려 예정에 없던 도이수텝 방문을 해치우고 게다가 요리교실까지 해치운 정말 효율적이지만 맛있는 생크림을 모두 당겨먹은 날이다. 이 이야기도 언젠가 할 날이 있겠지.
아 이래서 이 모든 여행기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려 했건만. 치앙마이의 성분이 1도 없는 출발하는 순간 한국에서의 에피소드가 끝나기도 전에 지치겠다는 생각에 손에 잡히는 대로 했더니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튼 그랬다. 다섯시부터 시작한다던 요리교실에 나는 부랴부랴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 헐떡헐떡 거리며 헬멧을 벗을 틈도 없이 들어갔고, 아시아인은 나밖에 없었고, 모두 남편과 아내 손을 잡고 온 이들이고, 혼자인 건 나와 내 옆옆자리에 앉은 스위스 여자아이뿐이고, 너무 급하게 달려와 게다가 땡볕에 너무 오래 있어 더위를 목젖까지 퍼먹은 바람에 머리가 아팠고, 콧물도 나오고.
그래도 그 복잡한 머리 사이사이로 신이 살살 차올랐던 건 별 이유와 개연성 없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하루는 의사가 하루는 경찰관이 하루는 기관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 같이 마냥 바라던 그 곳에 와있었으므로. 여기는 치앙마이이고 이제 나는 태국 요리를 할 참이니까. 멀리 아주 멀리 오래 아주 오래 돌고 돌아 이곳으로 왔으니까.
칼 등으로 마늘을 한 번 찧고 잘게 다지는 내 모습을 보고 다른 대륙에서 온 이들은 나를 지혜롭다며 재료 손질이 아주 능숙하다며 홍시 맛을 가려 낸 장금이 보듯 했다. 그날 저녁 4시간, 나는 요리를 아주 잘 하지만 한국의 식재료가 없는 이곳에서는 보여줄 방법이 없어 아쉬움을 달랠 길 없는 요리 잘하는 다소곳한 한국 여자아이 역할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짝짝짝.
아 이 소리는 태국요리를 가르쳐 주던 에이의 목소리.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네 가지 요리를 했지만 원래 그 맛이 이 맛인지 알만 한 데이터베이스가 나에게는 없으므로 내가 한 태국요리는 태국요리 다운 맛인 걸로. 나는 태국요리를 잘 하는 사람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