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싸우기 시작해서 어쩌나
첫째를 데리고 기분 좋게 동네 책방에 들러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 선 넘은 장난을 치는 첫째를 혼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나를 보고 잠시 얼음이 된 첫째는 입꼬리를 저만치 내리고 울음을 참는 듯했다. 답이 뻔히 정해져 있는 물음으로 나는 이 야단을 끝내려 했다.
너, 잘못했어 안 했어.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쳐진 입꼬리로 앙 다문 입으로 쏟아질 눈물을 결코 흘리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내세운 모습으로. 절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답답했다. 아니 진짜 잘못한 건 넌데 이놈아! 왜 대답이 없어! 나도 이 야단을 빨리 끝내고 싶다고! 답이 정해져 있는 야단회에 아이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 화났어. 속상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 너무 어리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이(라기보다 나는 아직도 아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의 입에서 어떤 감정의 말이 나오면 정말 나는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보거나 들은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왜 니가 화가 나. 속상해? 그건 속상한 기분이 아니라-라고 까지 말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하호호 즐겁게 이야기하고 장단 맞춰주던 엄마가 갑자기 돌변해서 내 잘못을 지적질하는 상황에서 느낄법한 감정. 나도 겪어서 잘 알고 있지만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거나 명명해야 하는지는 해본 적 없어서 내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당황? 황당? 서러움? 안아주세요? 그러지 마세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그래, 엄마도 화났어. 아무 말도 안 할래.라고 해버렸다. 아 저렇게 말했었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기로 하고 20분 정도 차 안에서 조용히 왔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늘 하던 빈자리 찾기 놀이도 비밀통로를 찾는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잠시 그러다 또 잊고 웃으며 콧노래를 부를 줄 알았는데, 엉킨 감정을 풀지 못하면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어떤 성장 단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면서 뭉클해졌다. 우리가 단어로 이름 붙이지 못한 수많은 감정과 오묘한 마음을 이제 정말 겪기 시작했구나.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끄고 아이를 내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져준 게 아니라 고달플 너의 인생을 미리 위로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