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로코에서 온 방낙타입니다.
공항을 벗어나 나를 딛어도 좋다는 러시아의 허락을 미리 구하지 못한 동행자 덕에, 반나절을 공항에만 머물렀어요. 말이 반나절이지 그 모든 초를 하나하나 세아리는 기분은. 정말이지 내 살다살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은 처음이었다니까요. 공항구경의 첫 라운드는 신기하고 신나지만 반복되는 라운드에 이내 장소가 공기가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지루해지고 갑갑해지고 그런데 티비를 봐도 모르겠고 간판을 봐도 모르겠고 신기한것도 한두 시간이지. 역시 과거의 우리가 우주에서 제일 멍청해요.
너무 심심했던 우리는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의 마음으로 공항에서 가장 자기 편한 곳, 쉬기 좋은 곳,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면 어디가 좋을지, 일주일치 식단을 무엇으로 하는 게 좋을지. 동선을 고려해보기도 하고, 취향을 반영해보기도 하고. 뭐 이런저런 출처를 알 수 없는 생각을 만들어 쥐어짜보았어요.
그래도 시간은 기어만 가고.
그래도 시간이 가긴 가고.
omg. 백야. 소문으로만 듣던 백야. 백야. 백야. 동행자는 이과생이지만 공대생이지만 백야라니. 보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지구의 의도를. 우주의 의도를. 정말 이 모든 걸 프로그래밍한 누군가는(어쩜 '누군가'의 개념이 아닐지도) 정말이지 얼마나 오래 꼼꼼하게 이 세상을 준비했던 걸까요.
그리고 동행인은 그제야 우리가 당장 바르셀로나에 내려 무엇을 타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 지를 모른다는게 생각이 났나봅디다. 진실된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다니며 부랴부랴 우리의 갈 길을 찾았죠. 터미널 놀이를하고 있을 때가, 백야에 침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시간은 흘러 버거킹 직원들도 퇴근하고, 끝까지 같이 있어줄 것 같던 다른이들도 약속한 비행기로 떠나고. 정말이지 공항에는 우리 둘 뿐입니다.(그럴리는 없지만 그랬어요)
먼 발치에서 바라본 러시아는 좀 괜찮은 것 같았어요. 언젠가 미리 허락을 구하고 좀 더 긴 시간 이 공항 밖에 발을 붙여보고 싶어요.
아, 그래서 우린 러시아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 러시아에는 가보지 못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