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도 이런 변덕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모로코에서 온 방낙타입니다

by 지민

걱정이 많아요. 동행자는 원래 사서 걱정하는 성격인데다, 혼자(동행이라고는 낙타 인형뿐인) 다니는 여행에서 분실이나 상실(기억이라든지 예약해둔 이동수단을 제 시간에 탈 기회 같은)은 훨씬 더 심한 영향을 그리고 해결에는 곱절의 힘이 든다는 걸 잘 알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서두르고 넘치게 어림잡아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엔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설렘이나 기대감 같은, 마음에서 오는 화학적이고 낭만적인 이유가 아니라 귀에 흐르는 소음, 대놓고 물리적이고 무례한 이유에 슬슬 성이 났어요. 한두 시간 잠을 설치자 제발 그만 해줘의 애원조에 불안함까지 더해졌죠. 이대로라면 내일 약속한 포르투로 가는 이른 아침의 비행기를 놓치는 걸 시작으로 완성되기 전 도미노가 무너지듯 우리 여행도 줄줄이 망가질 것 같았어요. 몇 시간 뒤의 우리를 믿지 못하고 15분 단위로 알람을 엮어두며 인생 최악의 쪽잠을 경험했죠. 정말 기가 쪽쪽.

스크린샷 2015-07-02 오후 2.23.58.png 안자요? 안자요?

정말 시끄러운 게, 그날은 분명 금요일 밤도 토요일 밤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늦게까지 나와있을까. 아 어쩌면 믿을게 없어서 저렇게 늦게까지 나와있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잡생각만 가득했어요. 사실 이리 시끄러운 골목에서의 마지막 밤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어요. 숙소 주인의 이중예약이 우릴 이곳으로 밀어냈죠. 스페인 로컬들이 사는 아파트에 새로운 잠자리를 주겠다는 주인의 말에, 정말로 약속한 숙소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숙소에 몰래 콧노래를 부르며 일기장에 내 운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새벽에 우린 혼도 진도 정신도 다 빼앗겼어요. 정말 상황이라는게 기분이라는게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어요. 결국 멍텅구리가 되어 람블라스 거리를 떠났어요. 이런 식의 마지막이라니.

스크린샷 2015-07-02 오후 2.22.46.png 화가 난다! 화가!!

걱정이 많아요. 원래 사서 걱정을 하는 성격인데다, 동행인이 없는 낙타 인형과의 여행에서 비행기를 놓친다는건 정말 생각하기 싫은 일이죠. 그래서 넘치게 서두른 우리는 공항 출국장에 한 시간 반이 넘게 일찍 와버렸어요. 잠을 못 잔 우리가, 넘치게 어림잡아 넘치게 일찍 도착한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닥까지 내려간 입꼬리는 올라올 줄 몰랐죠. 그렇게 몸도 입꼬리도 쳐진채로 게이트와 시간만 확인하길 여러 번, 그러다 우리 앞에서 같은 전광판을 보고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를 봤어요.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손의 위치 , 단출한 배낭, 유난하지 않은 차림새.

스크린샷 2015-07-02 오후 2.22.56.png wow! lovely Y.Y

지금도 좋아요. 그런데 만약에 아주 만에 하나 사람이라면 내가 살아보고 싶은 뒷모습을 본거예요. 그저 좋아서 보고 있자니 주책없게 코끝이 찡해졌어요. 사랑하는 임자의 손을 잡고 곧 떠날 비행기 게이트를 확인하는 뒷모습이란.


정말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어요. 이런저런 변덕을 지나 결국 우리는 몽롱하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