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모로코에서 온 방낙타입니다.
# 깃발의 시간
옆으로 앞으로 다닥다닥. 빛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집들의 골목을 지나가자면 어둡지만 포근한 기분이 드는 건 집들이 서로 손을 잡으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덤으로 이곳엔 유난히 깃발 혹은 꽃잎 같은 작은 종이들이 머리 위로 찰랑찰랑 거려요!
# 오늘도 어둠은 쉽게 오지 않아요.
21시인데 이지경입니다. 정말 좋아요. 빛이 가득 한 건 낮뿐만이 아니에요. 이 밝은 밤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이미 걷고 지도를 보고 선택하고 먹고 판단하는 여행자의 일과를 끝냈어요.
새로운 것도 봐야 하고 감상도 남겨야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 여행 중 가장 필요한 건 해진 후의 시간이죠. 해가 넘어가고 말고는 중요치 않아요. 주어진 의무의 시간이 지나고 모두 돌아가기 위해 일과에 셔터를 내리는 시간. 그래서 하던 일도 멈추고 시작은 내일로 미뤄야 하는 시간. 여행길, 해진 후의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앉을 곳이 필요해요. 도루강을 볼 수 있는 강가 시멘트 계단 위가 좋겠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본 적 없는 이가 다가왔어요. 나는 너희 나라말을 모르는데 그렇게 너희 나라 말로 말하면 내가 이해를 못하는데 적어도 내 말 알아들을 수 있어? 정도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포르투의 낯선 이는 커다란 짐가방에서(그는 모든 세간살이를 짐가방에 이고 다니는 달팽이 같았어요. 그러니 집가방이라고 해둡시다.) 찢은 종이를 찾아 무언가를 썼어요. 다시 집가방을 뒤져 크기도 색깔도 팔뚝 같은 무엇을 꺼내어 우리 곁에 놓았습니다. 우리 옆에서 한참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한참을 앞만 바라보았어요. 모험을 좋아하는 우리지만 겁이 많은 모순덩어리이므로 바짝 쫄아있었지요. 그러다 집가방 달팽이가 떠나려는지 말을 멈추고 돌아서 걷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뒤로도 한참을 앞만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죠. 정말 갔어요. 오포르투의 집가방 달팽이.
그 팔뚝 같은 무엇은 비스킷이었고 우리는 그 팔뚝을 고대로 놓아두고 왔어요. 추적장치가 달려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도대체 집가방 달팽이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걸까요.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어둠은 쉽게 오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