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망생

@포르투갈

by 지민

이번 생은 포기했고 혹 다음 생에 포르투갈 주민이 될 수 있다면


-. 아줄레주 장인

-. 트램을 운전하는 이

-. 에그타르트 만드는 이

-. Best Estoria 주인장


이 될래요.


# 아줄레주 장인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보고 있자면 세상 모든 것이 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지는 기분에 흠뻑 젖어요. 그 기분 마르지 말라고 포르투갈에서는 길에 널린 아줄레주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느라 바빴어요.

파란 물감과 타일에 파묻혀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그리는 이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그러자면 나는 당장 어디에 찾아가야 하는 걸까요. 아줄레주 장인 지망생의 마음가짐으로 거리를 걷다 우리는 이곳을 지나게 되었어요.

문 입구에서 우리를 향해 활짝 서있는 아줄레주들의 유혹에 한없이 나약한 우리는 홀린 듯 들어섰죠. 오라 해서 갔는데 세상에 여기저기 아줄레주가 가득한 것도 모자라 주인 아저씨가 보여주는 엽서들은 어찌 그리 또 우리 마음 같던지. 아줄레주를 몽땅 집어오고 싶었지만 모든 짐을 이고 다녀야 하는 달팽이 같은 여행자의 어깨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아쉬운 대로 엽서라도 양껏 집었는데 아 글쎄 주인 아저씨가 반틈을 뚝 집어서는 선물이라며 가격을 반토막 내 부르며 웃어주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따뜻해진 마음에 주책 맞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요. 게다가 가게 한켠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모습이 튀어나와있었어요. 아줄레주 작업은 이렇게 한단다! 라며 아주머니가 아줄레주 그리는 이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계셨죠. 자그마한 떨림에도 정교한 패턴이 망가지는지, 길고 단단한 막대들을 이용해 당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계셨어요. 세상에는 타일과 붓 그리고 당신만 있는 듯 빠져 계셨죠. 아 정말 멋진 일이에요. 흰색과 파란색 그리고 인내와 꾸준함으로 기묘하고 멋진 세상을 만들어내다니. 훗날 장인이 되기 전 이곳에서 견습생 생활을 해야겠어요!


# 트램을 운전하는 이


길 한가운데 저런 전차가 다닌다니! 잠시 한국의 개화기를 사는 듯해요(아주잠시!)! 전차가 지날 때마다 넋을 놓고 구경했는데 침은 안 흘렸나 모르겠어요.

이 좁은 길을 나다닐 수 있을까 싶은 곳을 트램은 요리조리 구석구석 야무지게 다니고 있었어요. 노란 트램 맨 앞자리에서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며 모두를 이 동네 구석구석으로 실어다 주는 기관사가 되어보고 싶어요.



# 에그타르트 만드는 이

언젠간 이 에그타르트를 내 손으로 만들어 커피와 함께 다른 이의 사색 또는 휴식의 시간을 돕고 싶어요.



# Best Estoria 주인장


때가 닥쳐 숙소를 결정하는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 숙소 실패에 대한 불안함을 늘 갖고 다니죠. 급하게 예약된 유난히 저렴한 리스본의 숙소에 우리는 한껏 쫄았어요. 참 이래서 안된다니까요. 싸면 싸다고 불안하고 비싸면 비싸다고 불만인 게. 숙소를 향하는 길은 어찌 또 그림 같던지. 우리의 불행을 극대화하기 위한 밑밥이 아닐까 불안감이 더 커져만 갔죠.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흔하지 않은 이름의 호스텔 Best Astoria에 도착했어요. 역시. 모두가 친절한 그곳. 호스텔이라고 예외가 아니더군요.


텅 빈 6인실. 독식의 6인실.

동네 한복판에서 현지인이 된 기분을 주는 이웃 창문들 그리고 비둘기들.

게다가 아저씨는 또 얼마나 친절하셨는지 말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동행인은 오래전 한국이 이겼던 축구 경기가 미안해진답니다. 가끔 이 여행에서 들고 다녔던 늙은 휴대전화를 꺼내 남겨진 wi-fi목록의 호스텔의 이름을 보며 그리워해요. 머무르는 내내 아 Best Estoria가 우리 아빠 꺼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 없던 아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니까요.




이번 생은 됐고 다음 생에 이곳을 택할 수 있다면 기관사가 되어 아침에는 도시를 느릿느릿 가로지르는 트램을 몰고 오후에는 사람들에게 에그타르트를 만들어주고 주말에는 아줄레주를 그리는 삶을 살고 싶어요. 포르투갈은 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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