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난데없이 출장을 간다 했습니다. 한 계절을 나기 위한 짐 더미 맨위로 나를 챙겼습니다. 하다하다 이제 출장까지 따라가요. 그래도 동유럽이라니! 소문으로만 듣던 그 동유럽에서 한 계절을 머무른다니! 어감도 낯선 보더레디 갈란타 슬로바키아라니!
늦여름이라 그런지 도착하고 나서 처음 하루 이틀은 덥기도 약간 습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이내 한국과는 조금 다른 높고 맑고 상쾌함이 최상급인 가을 날씨가 따라왔어요.
어딜 보나 결국 눈이 막히는 한국과 달리 그곳에선 어디서든 먼곳을 보고 있자면 결국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긴 선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우린 그림 속을 지냈어요. 넓은 저택 옆으로 펼쳐진 더 넓은 풀밭(물론 넓은 저택에서 우리는 단지 방 한 칸을 차지한 객의 신분일 뿐), 거대한 레이스 철문이 열리는 입구를 지나면 뒤뜰엔 호두나무가 있고 집 앞엔 낮잠을 자거나 저녁에 별을 보기 좋은 나지막한 언덕까지 있죠. 정확한 시대와 장소는 불분명하지만 분명 있을 톰 소여나 빨간 머리 앤의 세상이에요.
탐험하는 기분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슬로바키아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죠. 다닥다닥 붙어 빛도 공기도 불어 다닐 틈 없는 어느 복잡한 회로에 살던 우리는 결국 땅과 하늘인 도화지 같은 곳에서 고삐가 풀려놓으니 그제야 아, 우리가 실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었구나.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뭉클한 마음을 가졌어요.
이곳 사람들을 열기구를 그렇게들 타더라고요. 퇴근길 하늘과 땅의 경계로 빨려 들어가듯 차를 몰고 가다 어디선가 큰 풍선이 보이면 무작정 그 방향으로 향했어요. 마냥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땅이 닿아 힘없이 꺼져가는 큰 풍선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과 중 하나였죠. (지나고 이렇게 글로 남겨놓으니 정말 의미도 재미도 없기가 최고네요.)
하다하다 출장까지 따라갔어요. 그래도 땅도 하늘도 실컷 보고 시간이 하늘을 따라 움직이는걸 계절이 지나는걸 눈으로 살갗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는 가장 (무엇인가와) 가까운 시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