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듣던 노래도 온 공간에 흘려 듣는 것.
평소 숨어듣는 아이돌 노래를 사방 매달린 스피커로 들으며 손님이 드문 2층에서 서점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가 (손님이 드문 2층에서) 서점을 한다는 건
#1. 우리 모두의 대과거
조각이라 믿었던 누군가의 생일을 알리고 축하하고자 하늘색 벽보를 만들어 학교 담장에 붙였던 일도
세상의 실수로 인한 일이라 다시는 반복될 일이 없을 것 같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중소도시 방문'에 열렬히 응답하고자 생애 첫 조퇴용 거짓말을 하고 뛰던 일도 모두 과거일 뿐이다.
어른이 된 나는 그저 조용히 숨어 음악을 듣고 숨어 영상을 뒤지고 숨어 사진을 저장한다.
분명 숨어서 했는데 어느새 직장동료에게 ‘ 어! ** 1위 했더라! 축하해! ‘라는 말을 듣고 있었고 뿌듯해 하며 자식칭찬을 들은 엄마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형 모니터와 내 본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일정 시간 명령을 기다리다 평소 내가 지정해둔 누군가의 공항 사진으로 화면을 보호하기 시작한 야무진 OS덕에 잠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 전환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냐는 과장님의 질문에 진심으로 얼굴을 붉히며 ‘ 아휴. 쟤가 제 남자친구면 여기 못 있어요.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해야죠... ’ 라며 본심을 드러낸 나는 직접적 행동은 없으나 간접적으로는 정도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돌을 좋아하는이다.
#2. 이 심란한 우주에 나 그리고 너희의 노동요
책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공간을 보러다니던 나는 덜컥 어느 공간을 골랐다. 예상보다 넓은 공간에 예상보다 심란한 벽지를 만난 나는 혼자였다. 업체에 전화를 걸어 얼마에 벽지를 정리해줄 수 있느냐 물었더니 그들은 나에게 60만원을 벌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울하게 신이 났다. 통장에 들어올 돈도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 적도 없는데 낯선 사람의 전화기 너머 한마디로 곧 60만원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60만원 벌이에 나섰다. 이 외로운 여정이 고되지 않았던 건 적절한 시기에 돌아와준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내 즐겨찾기 범위에 있는 두 팀이나 그 시기에 돌아와주었다.) 내가 벽지를 뜯고 롤러를 굴리고 붓질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 구석구석에서 그들은 노동요를 불러주었다.
삼국지에서 군악대는 표면상 약하고 군량만 축내는 유닛일지 모르나 사라질라치면 곧바로 아군의 말살속도로 빈자리가 처절하게 드러나는 특별한 유닛이다. 나의 군악대는 표면상 말랐지만 실상 약하지 않으며 군량을 많이 축내지 않는 선에서 나의 사기진작에는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슈퍼 유닛이다. 그렇게 적절한 시기에 돌아온 그들 덕에 나는 60만원 벌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3. 넓은 당구장 서점에서 nananana yeayeayeayea
안 그래도 손님이 드문데 하필 2층인 걸까, 2층이라 손님이 드문 걸까. 전후인과가 어찌됐든 나의 이곳은 2층에 위치하는 손님이 많지 않은 서점이다. 이어폰이 아니면 절대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던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사방 구석에 매달린 스피커에게 이들의 노래를 청한다.
내 서점을 사이에 두고 1층에는 식당 3층에는 집을 갖고 계신 주인아저씨와 가족분들의 발자국 소리가 더 잦다는 사실을 전수조사로 직접 경험한 뒤로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에 함부로 음악소리를 낮추거나 음악을 바꾸는 게 효율적이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유효 발자국이면 유효 발자국 소리로 밝혀진 후 느긋하게 음악을 낮추거나 바꾸는 것이 더 효율적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태 그들의 노래를 손님들에게 들킨 적은 없다.
(손님이 아예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항상 그들의 노래만을 틀어놓는 건 아니라는 의미이니
너무 안 된 마음을 가질 건 아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가 (손님이 드문 2층에서) 서점을 한다는 건
숨어 듣던 노래도 온 공간에 흘려 듣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