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치앙마이에서 그림 하나 남기고 올 뻔했지 뭐야.

Ep004

by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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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04_나도 치앙마이에서 그림 하나 남기고 올 뻔했지 뭐야.


1월 시린 한국의 공기를 품고 태국 햇빛을 받으러 나는 갔다

Ep.004

그날 역시 햇빛이 절정에 이르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어디든 들어가서 뭘 좀 마셔줘야 되는 시간이 다가옴에

내 것 되어버린 빌린 자전거를 급한 마음을 동력 삼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고

아니 여태 이런 장소가 내 눈에 발견되지 않았단 말이야?싶을 정도로 예쁘다기보다 멋있다기보다 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뭔가 동화 같으면서도 힙하면서도 핫하면서도 쿨한.

적당히 넓은 공간에서 적당히 편해 보이는 의자에서 자유롭게 여럿이 앉아 햇빛을 온몸으로 겪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세우고 대문을(아, 대문이라기 뭣하지만 아무튼 바깥과 이곳을 구분 짓는 그 무언가는 분홍색 나무로 되어있는 울타리 같았는데, 이것도 내 마음에 쏙) 밀고 들어가

' Hi! '


그러자 모두 날 기다리고 있었던 양

입에 있던 담배를 손에 갖고 간 후 ' Hi! '하는 이도

널부러놓은 자신의 물건을 챙기며 자리를 만들어주는 이도

뭐 아무튼 날 기다리고 있었던 양 그렇게

그리고 나도 나 왔엉^^* 이렇게


그렇게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함께하는 치앙마이스러운 공간에 앉아 Thai tea를 시키고 너는 나는 어디에서 왔니 뭐하니 여긴 마음에 드니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큰 테이블을 두고 앉아있었는데 내 건너편에는 엄청난 기운의 동양인이 앉아있었다. 주인의 친구인지 가족인지 혹은 주인인지 지금도 알 수 없는 그이는 상투머리에 손에는 커다란 옥반지를 하고 있었고, 까만 옷으로 온몸을 휘감은 게 커다란 하나의 먹 같았다. 곧 중요한 경기 출전을 앞두고 심기일전하는 하키 선수 같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조몰락거리고 있었는데 그 예리예리한 은색의 물건은 콤파스였다. 중학교 기술가정시간 도면을 그릴 때 사용하던 그런 수준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멋있고 조금 더 날렵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콤파스였다.


그렇게 예리하게 콤파스를 만지던 그는 아까보다는 덜 뾰족한 표정으로 우리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그러면서 백지 위에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온몸으로 ' 나는 타투장인이다. 나는 타투장인이다. 나는 타투장인이다. '를 외치고 있었으나 그가 대체 백지와 콤파스로 뭘 하는지 그래 뭐 그냥 끄적이는 거겠지.라는 마음으로 몇 번 흘깃거리던 눈길을 이내 거두고 관심도 거두었다만.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른 뒤 입을 떡 하고 벌린 게, 그는 프린트였다. 인간 프린트. 와 그냥 연필이랑 콤파스만으로도 와 진짜 명암 표현하며 대칭하며 깔끔한 저 그림. 문양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그림을 인쇄해낸 인간프린트. 그는 정말이지 눈 앞에 두고도 믿을 수 없겠더라. 그렇게 그는 스스로 문양을 그리고 원하는 이의 몸에 돋을새김 하는 좀 겁나는 멋쟁이였던 것이다.


이런저런 시트콤 같은 상황을 거쳐 며칠 뒤 며칠을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이퐁 충전기 개놈자식)

그리고 운이 좋게 나는 그가 누군가의 몸에 그림을 행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작지만 소신이 철철 흐르는 그의 작업실에서 편하게 앉은 누군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의 몸에 그의 뜻을 그려주는 모습은 좀 멋있었다.


나도 치앙마이에서 그림 하나 남기고 올 뻔 했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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