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제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겪은 슬프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배꼽 빠지지 않게 잘 붙들고 들어 보세요.
어렸을 적 저는 빼어난 가창력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노래를 못하지도 않은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이 악몽 같은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수행평가를 보는데 이탈리아 가곡 '까로미오 벤'을 듀엣으로 부르는 것이었어요. 한 반에 오십 명이 넘었던지라 지나다니기도 힘들 만큼 콩나물시루였기에 앞에 나가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노래를 해야 한다니 선생님의 말씀에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시험을 봐야겠기에 단짝이던 명숙이와 듀엣으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까로 미오 벤, 그레 디 미얼 맨, 쎈 자디 떼, 라안 그위시엘 고오르..."
오매, 아름다워라!
명숙이와 나는 노래를 잘했을 뿐더러 목소리도 참 잘 어울렸습니다.
연습할 때뿐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요.
시험 당일 날,
앞 번호부터 두 명씩 불려 나가 노래를 하는데 어쩜 그리 하나같이 노래를 잘하는지, 내 번호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노래는 고사하고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순서가 다가올수록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빠르게 뛰어 곧 쓰러질 것만 같더라고요.
그런데...
그런데...
결국 오지 말아야 할 저희 팀 순서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정신을 가다듬고 이를 악 물었고 선생님의 시작 소리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꺄~~ㅎ;ㄴ0ㄷ...ㅔㅔㅑㅏㅡㄱ나... ㅠㅠ"
시작 소리와 함께 제 입에서 나온 소리는 노랫소리가 아닌 울음소리였으니 보통 알고 계시는 염소 울음소리 말고 사람의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 아실까요.
그런데 처음엔 노래를 잘하던 명숙이도 조금 있으니 저와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반 아이들은 책상을 치며 온몸을 비틀며 배꼽 빠져라 웃어대고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진 내 옆에서 명숙이는 우는 소리로 음악 선생님께 처절하게 매달렸습니다.
"선...새 .ㅇ 님 ㅜㅜ 한. 번. 만 더...하..게 해..주세요 ㅜㅜ"
"그래, 그럼 한 번 더 해봐"
얼굴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로 겨우 허락을 한 음악 선생님 앞에서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된 명숙이.
난 너무 미안해서 명숙이만이라도 잘하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일까요.
저의 대인 공포증에 급성 감염된 명숙이는 계속 울음소리만 냈고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져갔습니다. 그때 반 아이들에게 개망신을 당하고 얻은 실기점수가 유전적으로 새가슴이었던 나는 3점, 저에게 급성 감염된 명숙이는 저보다는 증상이 덜했던지 8점이나 받았더라고요.
10점 만점이었냐고요?
천만에요,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점수 60점 만점에 3점이었답니다.
이후 후유증이 오래 남아 회사 입사 후 노래방에서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손뼉만 치고 앉아있고, 꼭 해야 하는 자리에선 "뽀뽀뽀"같은 간단한 동요로 해결했는데 이 또한 고음불가라 술맛이 확 깨는 목소리의 소유자랍니다.
50이 넘은 지금은 알코올의 힘을 빌려 어지간한 점수가 나오지만 아직도 앞에 나가 자기소개를 한다던가 자리에 서서 책을 읽는 것도 제겐 너무 버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