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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Aug 09. 2019

딸을 보며 떠오르는 옛 추억

추억 속으로


<2013. 9월 글 퇴고>


나에겐 딸이 셋 있다.

대학생인 첫째, 고등학생인 둘째, 그리고 10년 터울로 태어나 금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늦둥이 딸까지.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거실 창가에 앉아 늦둥이 딸아이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로 아이가 학교생활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하면 내가 과장해서 맞장구 쳐주는 것으로 내용은 대체적으로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이다.

오늘은 학교에서 누가 혼났고,

시험을 봤는데 누가 몇 점을 맞았고,

오늘 하교 길에 친구 누구랑 같이 왔는데 그 아이는 우리 옆 동 사는 아이고 등등...

"그래서 울 지민이도 혼난 적 있어?"

"엄만 나를 뭘로 보고"하며 눈까지 흘리길래

"그럼 누구 딸인데, 아이고 예뻐라" 볼이 빨개지도록 뽀뽀를 해주며 깊게 안아줬다.

거기까지가 딱 좋았다.

조용조용 말을 하며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아이가 손으로 여기저기 만지고 당겨보더니 하는 말,

"근데 엄마, 엄마 코는 왜 딸기랑 똑같이 생겼어"

"엥?? 무슨 소리야"

"딸기 씨가 엄마 코에 있잖아. 이렇게 많이... 외할머니는 왜 엄마를 이렇게 생기게 낳았어?"

"...... ㅠㅠ"

기다란 얼굴형에 커다란 코, 움푹 들어간 눈, 툭 튀어나온 광대뼈, 웃으면 잇몸이 다 보이는 커다란 입을 가진 나. 외계인가 싶겠지만 지구인이 맞다.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은 보통 이 나이 때 사물을 보는 눈이 커지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서 예뻐'라는 말을 달고 살다가 우리 엄마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추녀 쪽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늦둥이 딸아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서인지 언니들과 다르게 고집이 무척 센 편인데 무늬만 딸이지 하는 짓은 영락없는 사내아이. 스커트나 원피스는 물론 바지도 무늬가 들어갔거나 색상이 화려한 것은 거부하며 옷이나 신발도 핑크나 노란빛이 도는 것은 질색을 한다.

헤어 스타일도 귀엽게 뽀글이 파마를 해서 예쁜 방울 달아 묶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은 몰라주고 더운 날씨에도 사자의 갈기처럼 풀어헤치는 것만 고집하니 하루는 살살 달래서 아주 조금만 자르자고 설득한 후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


미용실에 가는 중에 미심쩍어하며 "엄마, 정말 조금만 자르는 거지?"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자르고 나오는데 생각보다 짧았는지 "엄마한테 속았어 ㅠ"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땅만 보고 걷는 딸내미.

"지민아, 왜 그래?"

"... 친구들이 본단 말이야"

그런 아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어렸을 적 머리 자르던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40여 년 전 엄마는 두 살 터울이던 여동생과 나의 머리를 손수 잘라 줬는데 햇볕이 잘 드는 마당 한편에 나무 의자를 놓고 딸들의 어깨에 보자기를 씌운 후 가위질을 시작하셨고, 엄마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와 함께 나른한 햇볕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다 깨 보면 엄마는 오른쪽과 왼쪽이 안 맞다며 어젼히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헤어 스타일은 항상 엄마가 자르기 편한 단발이었는데 왼쪽과 오른쪽 길이가 맞지 않아 오른쪽을 더 자르면 왼쪽이 길고, 왼쪽을 더 자르면 오른쪽이 길고, 한 번은 여러 번 자르다가 머리카락이 귀 위로 올라간 적도 있었으니 커트는 매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 매번 딸들의 울음소리로 끝나곤 했다.

"앙~~ 엄마, 이게 뭐야??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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