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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Aug 07. 2019

추억은 빨간 다라이를 타고

추억 속으로


<2013. 10 글 퇴고>

 

 평소에 자가용으로 다니는 깔끔하게 정돈된 대형마트보다 사람 냄새나는 재래시장에서 장보기를 좋아하기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재래시장 나들이를 하는 중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복작복작한 시장통을 거닐면서 사람들과 어깨도 부딪히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눈으로 즐기며 몇 개 사고 신선함이 느껴지는 생선과 저녁에 가족들과 구워 먹을 삼겹살까지 담고 나서 늦둥이 딸아이 손을 잡고 호떡, 꽈배기, 떡볶이, 어묵을 사 먹으며 조잘조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데 시장을 드나들 때마다 보이는 초입에 있는 생활용품점 앞에 가득 쌓인 크고 작은 빨간 다라이를 보면 자꾸만 어렸을 적 욕 풍경이 생각나는 것이다.


  1970년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인데 겨울 철이 되면 엄마는 재래식 부엌 아궁이 앞에서 삼 남매의 목욕을 시키곤 하셨다. 그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펌프 물을 사용했고 더러는 우물물을 사용했는데 물이 어는 겨울철을 제외하곤 빨래는 강가나 골짜기 계곡물을 이용했었고 식수 및 세숫물은 펌프 물을 이용했었다. 그런데 우리 집 대문 앞에 있던 펌프는 다른 집 펌프와 달리 힘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물이 잘 안 나오는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 처지는 물건이었는데 그러기에 재래식 부엌에 크기별로 걸려 있던 가마솥 가득히 물을 채우는 일은 장정이 하기에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집안일에 관심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 오로지 종일 바빴던 엄마의 몫이었다.

  시골집 부엌문은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엮은 거라 바람이 쉴 새 없이 슝슝 들어오는데  커다란 빨간 다라이를 잔불이 남은 아궁이 앞에다 놓고 엄마는 우리를 차례로 목욕시켰다.


  나보다 여섯 살이 위였던 언니는 혼자 해결했던 시기였던 듯 기억에 없고 오빠는 읍내에 양아들로 가 있을 때고 나와 여동생, 남동생 셋이 엄마 몫이었는데 종일 안팎으로 힘들게 일했던 엄마는 기진맥진 힘든 몸으로 목욕 준비를 시작했고 목욕 순서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제일 먼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에 남동생을 정성껏 씻기고, 조금 따뜻한 물에 여동생을 버거워하며 씻기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면 뜨거웠던 물이 많이 미지근해지고 엄마의 팔 힘도 거의 소진되어 힘 조절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인정사정없이 온몸이 빨개지도록 팍팍 밀어댔는데 더운물을 부어가며 한다지만 한겨울 통 목욕은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시장 입구 생활용품점에 수북이 쌓여있는 대야 앞에 서 있노라면 어린 영숙이의 "아파~"하는 소리와 젊은 울 엄마의 푸념 소리가 카세트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누른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가만히 좀 있어. 이 먹는 게 다 때로 가네. 아휴, 힘들어 ;;"

그러면서 엄마는 무방비 상태의 내 등짝에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치곤 했으니 나는 단지 때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서러운 구박을 받았다.


 커서 보니 내 몸은 지성 체질이라 실제로 때가 많이 나온다.

딸아이랑 대중목욕탕에 가면 아이는 아무리 밀어도 때가 안 나오는 반면에 내 몸에선...(더러운 얘기라 이하 생략)

그런데 오십이 넘은 지금, 어렸을 적 때 많이 나온다고 나를 구박하던 엄마와 구박받던 나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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